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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품격의 서정성과 역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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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저 공을 어떻게 쳐냈던가 의심이 들더니… 야구공 지름이 몇 센티나 됩니까…저걸 쳐서 안타를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아득할 뿐“

 

「이미 그를 찾아간 우리의 소설 기행」이라는 이인성 씨의 소설 중에
야구선수가 슬럼프에 빠지는 과정을 고백하는 대목인데요.
타자는 피처가 공을 손에서 놓은 순간부터
0.25초 안에 칠까 말까를 결정해서
0.2초 안에 배트를 휘둘러야 된다고 합니다.
그 영 점 몇 초를 두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타자로선 그때 끝나는 거라고요. 

 

스마트폰이나 디카가 보편화되면서 똑같은 장면 여러 번 찍게 되죠.
그 중 남겨지는 건 젤 처음 찍었던 컷인 경우가 많습니다.
두 번째 찍을 때부터는 직감보다 이성이 개입하죠.
구도를 따지고, 화면분할을 생각하고, 프레임 안에 걸리는 것들을 치우고...
그렇게 찍은 건 확실히 더 근사해 보입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처음 셔터를 눌렀을 때의 생기 같은 건 떨어지죠.
 
생각만 하고 있다가는 공이 어느새 들어와 버리고,
계산만 하고 있다간 찰나의 느낌은 사라져버립니다. 
그건 관계에서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나에게 이만큼 했으니까 나는 이 정도 해야지,
저 사람이랑 친해지면 나중에 유리하겠다. 
그러다 사람을, 혹은 사랑을 잃은 적은 없으신가요?
안녕하세요, 여기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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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2월 12일. 케냐 독립일을 나흘 앞둔 그날.
이 책의 첫 페이지가 시작 됩니다. 마우마우 운동을 비롯한 케냐 독립투쟁의 역사를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로 풀어낸 응구기 와 티옹오의 작품 『한 톨의 밀알』.


'책, 임자를 만나다' 이번 시간에서는 우리의 시선이 쉽게 가닿지 못한 땅, 그리고 그 위의 작품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한 톨의 밀알』
현대 아프리카 문학의 거장 응구기 와 티옹오의 대표작

 

1) 책 소개
노벨문학상 후보 1순위로 꼽히며 지난 20일 제6회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한 케냐 작가 ‘응구기 와 티옹오’의 『한 톨의 밀알』(A Grain of Wheat, 1967)이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응구기 소설의 최정점” “최고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하게 해준 위대한 소설”로 평가받으며 ‘아프리카 문학 베스트 100’(짐바브웨 인터내셔널 북페어) 1위에 선정된 대표작으로, 작가가 기존 판본의 오류를 바로잡고 내용을 수정한 최신 개정판을 반영하여 새롭게 내놓았다.


1963년 12월 12일 케냐 독립일을 나흘 앞둔 시점에 이야기가 시작되는 『한 톨의 밀알』은 마우마우 운동을 비롯한 독립투쟁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케냐 근대사를 다룬 역작이다. 울지 마, 아이야』등 이전 소설들보다 훨씬 성숙한 작품세계를 구현하고 있지만 주제나 소재 면에서는 연속성 및 유사성을 띤다. 그러나 회귀적이고 중층적인 서사 구조와 복합적 성격의 다양한 등장인물 등 소설 형식 면에서 중대한 변화를 보여주며, 이를 통해 “고전적 품격의 서정성과 역동성”을 획득하고 있다.


2) 저자 : 응구기 와 티옹오
현대 아프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탈식민주의 문학을 주도해온 거장. 1938년 영국 식민지배하의 케냐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에 수년간 지속된 마우마우 무장봉기에 가족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연루되어 고초를 겪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랐다. 식민지 케냐의 일류 고등학교인 얼라이언스를 거쳐 우간다 마케레레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첫 희곡 「흑인 은둔자」를 집필, 상연한다. 이후 영국의 리즈 대학에 입학, 재학 중에 동아프리카 출신 작가가 쓴 첫 영문 소설인 울지 마, 아이야를 발표하고, 『샛강』 『한 톨의 밀알』을 잇달아 출간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른다. 1977년 작 『피의 꽃잎들』을 전후로 한층 더 사회주의적이고 탈식민주의적인 전환을 보여주는데, 이후 제임스 응구기라는 영어 이름도 버리고, 집필 활동 역시 영어 대신 기쿠유어와 스와힐리어로 이어간다. 같은 해, 신식민체제의 실상을 고발한 풍자극 「결혼은 내가 하고 싶을 때 한다」를 기쿠유어로 집필, 상연하지만, 당국에 의해 상연 중단되고 교도소에 투옥된다. 『십자가 위의 악마』는 수감 중에 화장지에 써내려간 작품으로 그의 첫 기쿠유어 소설이자, 최초의 기쿠유어 현대 소설로, 작가의 문학세계 및 아프리카 문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국제사면위원회의 도움으로 풀려난 뒤 미국으로 망명하여 예일 대학, 뉴욕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으며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비교문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로터스 문학상, 노니노 국제문학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니꼴라스기옌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2009년에는 맨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고, 매년 유력한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꼽히고 있다.


◆ 217-218회 <책, 임자를 만나다> 도서

 

『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


범죄의 가면, 날이 가면 갈수록 늘어나는 그 가면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가면 속 민낯을 마주하는 일이겠죠.
이창무, 박미랑 두 범죄학자가 말하는 범죄의 가면 앞에서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방법.

 

'책, 임자를 만나다' 이번 시간에서는 『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를 통해서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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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소설가가 읽어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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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소설을』
소설과 마주하는 시간이 짙어질수록 빛나는 삶의 순간들에 관하여
 

매일매일 습관처럼 소설 한 편 이상을 읽는 사람,
‘댈러웨이 부인’처럼 웨스트민스터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런던의 거리를 걸어보는 사람,
세상의 모든 것이 소설로 통한다는 사람,
여기, 소설을 지극히 사랑하는 소설가가 스물일곱 편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소설가가 읽어낸 소설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위즈덤하우스 편집자 주리아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함정임 작가의 독서 에세이, 『무엇보다 소설을』입니다.

 

“소설이라는 말은 하나지만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 개성만큼이나 각 소설이 품고 있는 세계의 언어와 형식은 다 다르다”


함정임 작가의 말처럼 이 책에 담긴 스물일곱 편의 소설은 각기 다른 매력과 목소리를 갖고 있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빅토르 위고, 마르셀 프루스트 등 문학 거장들의 소설뿐만 아니라 반가운 한국 작가들의 소설도 다루고 있지요.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으로 꼽히는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 19세기 파리의 풍경을 그려낸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등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고전부터, ‘힙’한 현장을 거침없이 묘사하는 혁명적 소설가 김사과의 『천국에서』나, 괄호 사용에 대해 주목한 윤성희의 『웃는 동안』등 지금 우리 세대의 한국 문학까지 소설 속의 다양한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작품이 쓰인 배경, 작가가 소설을 쓰게 된 이유, 소설에 쓰인 작법 등 소설의 뒷이야기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지요.

 

소설가의 상상력 덕분일까요?
함정임 작가가 읽어낸 스물일곱 편의 소설은, 그저 소설 한 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공간을 이끌어오기도 합니다.


미셸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에서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 〈지리학자〉를 떠올리기도 하고,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에서는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불러오는 등 독자들이 미처 읽어내지 못했던 소설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독자 스스로가 소설 외에 또 다른 소설을 더 읽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듭니다.


더욱이 소설 한 편이 펼쳐지는 첫 장마다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사진에 숨은 문학 이야기도 담겨 있어서 소설을 보다 다채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같은 소설이라 해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작품의 무게는 달리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스물일곱 편의 주제 소설을 포함한 70여 편의 작품들에 대해 함정임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하나가 산이고, 산들은 골짜기, 즉 행간마다 메아리를 품고” 있다고 말이지요.

 

단 한 권으로도 강한 여운을 느끼고 싶으신 당신,
소설 속에 오롯이 빠져보고 싶은 당신,
그로 인해 온전한 나와 만나고 싶은 당신,
이제 『무엇보다 소설을』에서 안내하는 길을 따라, 당신이 소설 세계를 더 깊게, 더 짙게 두드려볼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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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개가 짖으며 흑인들이 모여 있는 구내를 가로질러 뛰어갔다. 몇몇이 소리를 지르며 여러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러자 개는 미처 달아나지 못한 남자를 쫓아갔다. 남자는 옆으로 빠져나가려 했지나 개가 그를 벽으로 몰아세웠다. 갑자기 그가 몸을 굽히더니 돌을 집어 공중으로 치켜들었다. 이제 개와 남자의 거리는 1~2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톰슨은 자신이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개가 남자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린드 박사가 나타나 뭐라고 소리쳤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던 톰슨은 안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적잖이 실망했다.
그는 사무실에서 나와 잔디가 깔린 구내를 가로질러 몇몇의 흑인들이 모여 있는 도서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린드 박사가 왼손으로 개의 목덜미를 잡고, 오른손으로 카란자를 가리키며 혼내고 있었다.
"너는 창피한 줄도 모르냐."
그녀의 목소리에는 경멸감이 한껏담겨 있었다. 카란자는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 두려움과 분노가 엿보였다. 얼굴에 맺힌 땀이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개가…… 개가…… 덤볐어요, 멤사히브."
그가 더듬거렸다.
"개에게 돌을 던지다니…… 네가 그럴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안 던졌어요. 던지지는 않았어요."
"너희 족속들이 거짓말하는 걸 보면……."

 

- 『한 톨의 밀알』 (은행나무)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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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한 사건들을 둘러싼 법정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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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아름답고 똑똑한 살인 용의자 여배우
그녀를 구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매력적인 두 변호사
그리고 그녀를 그림자처럼 지키는 조폭 보디가드
베테랑 연예기자와 자칭 천재소년 출신 새내기 변호사
이들을 둘러싼 전대미문 미스터리 살인사건 혹은 실종사건을 둘러싼 법정로맨스가 펼쳐집니다.
네이버 웹소설 미스터리 분야 역대 1위를 기록한 『키스의 여왕』이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몰입의 클래스가 다르다! 인생소설! 최고의 로맨스 소설!
네티즌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인기를 누렸던 『키스의 여왕』

이재익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Q 『키스의 여왕』은 작정하고 쓴 작품이더군요. 작가의 말을 보니까 헐리우드 영화 같은 소설 한편을 쓰겠다 아예 마음을 먹고 집필을 시작하셨는데요. 열광이라는 말을 실감하셨죠? 인생소설이다! 몰입의 클래스가 다르다! 등등 엄청난 찬사를 받으셨잖아요. 누적 조회수 1천만이라는 기록까지 세우셨는데... 이 정도면 흡족 하신가요?


A. 제 책을 안 읽어본 분들의 생각이 있어요. 어떤 이미지 일텐데요. 이재익 작가의 책을 보니까 엄청 재밌는데 남는게 없더라. 이런 생각인데 정확히 보신 겁니다. 굉장히 재밌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제 책을 보고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본적이 없어요. 하지만 남는게 있다는 사람 역시 본적이 없기도 하죠. 후유증이 전혀 없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작품 역시 흡족하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저는 잘 모르는) 고급 술 고급 차, 동네이름, 그리고 영화제목까지 실명으로 언급이 됩니다. 더블 제퍼디(더블 크라임), 파이트 클럽, 정말 재미있게 봤던 영화들이구요. 영화 <세븐>의 오마쥬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죠. 왠지 소설을 구성하는 단계에서 이미 소재들로 킵 해 두고 시작하신 건 아닐까 상상했는데, 어떤가요? 어느 단계에서 이 소재들이 수집되었나요?


A. 제가 처음 구상해본 것은 누명을 쓴 인물의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그 인물이 감옥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치닫는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했죠. 그런 구상을 하다가 연결되었던 것이 <더블 크라임>이라는 영화였어요, 그 다음에 <세븐>이라든지 <파이트클럽> 같은 영화나 레퍼런스는 처음부터 구상한 것은 아니고 소설의 뼈대를 모두 설계한 후에 헐리웃의 느낌을 더해보고 싶은 마음에 사용하게 되었죠. 마치 시드니 샐던의 소설을 보는듯한 그런 느낌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는지 아무래도 그런 레퍼런스를 자주 사용하게 되었죠.

 

Q 마지막 질문... 웹소설의 주 독자층이 10대와 20대잖아요. 책이라는 매체는 독자층이 더 넓어지겠죠. 열광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키스의 여왕』...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지 추천을 해 주시구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웹소설 지망생들이 굉장히 많아요. 접근은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은 낮지만 생존하기는 더 어려운 플랫폼이 아닐까 싶은데... 그들에게 조언을 해 주신다면?


A. 일단 이 소설은 재미를 보장해드릴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읽으면 시간이 훌쩍 지납니다. 그리고 작품의 분위기가 도시의 야경을 보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요. 서늘하면서도 그 안에 들어가면 나라는 존재가 굉장히 작아보이죠. 하지만 그런 작은 존재들이 모여 만든 것이 화려한 도시의 야경이거든요. 그런 아이러니함을 느끼실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키스의 여왕이재익 저 | 예담
누구라도 보는 순간 키스하고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인 아시아 최고의 배우 손유리. 그녀는 IT 재벌 이선호와 화제의 결혼식을 올리고 둘만의 요트 여행이라는 지상 최고의 허니문을 떠난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로맨틱한 신혼 첫날밤을 보내고 행복에 겨워 눈을 뜬 아침, 거대한 운명의 폭풍우가 그녀를 덮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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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등산의 역사는 얼마나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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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도전의 역사
이용대 저 | 마운틴북스

이 책의 저자는 등반가이면서 코오롱 등산학교의 명예교장인 이용대 씨 입니다. 한국인이 쓴 최초의 등산의 역사에 관한 책이 바로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라는 책인데요.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이용대 씨가 출간 10년을 맞아서 개정판으로 출간한 책입니다. 한국 근대 등산 태동기의 기록, 중국의 등반 기록, 그리고 국제적으로 유명한 등반가 몇사람의 이야기가 새로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사실 등산의 역사가 얼마나 되는지부터가 궁금한데요. 사가들은 1786년으로 잡는다고 합니다. 그때 프랑스의 의사였던 미셸 파카르, 그리고 그가 포터로 고용했던 수정 채취꾼인 자크 발마의 몽블랑 등정 성공이 바로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죠. 흥미로운 점은 몽블랑 등정에는 무수한 뒷 이야기가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발마가 혼자서 영웅이 되기 위해 "파카르는 정상에 서지 못하고 나만 정상에 섰다."라는 허위 선전으로 당대의 큰 파문을 일으켰다는 것이죠. 이 사건의 진상은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제댈 밝혀졌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등반의 역사가 찬란한 인간 승리의 역사이기도하지만 그 뒤에는 그림자가 없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례이기도 하겠죠. 이 책은 기본적으로 500페이지가 넘는 구성과 전문적일 것만 같은 생각에 두려움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면 인물과 사건 위주의 서술 덕분에 쉽고 재밌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카프카
라이너 슈타흐 저/정항균 역 | 저녁의책

카프카가 4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도 백년의 시간을 훌쩍 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란츠 카프카라는 작가의 이름은 여전히 신비롭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죠. 그래서인지 카프카는 작품뿐만이 아니라 그의 애인이나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개인적이 일기를 찾아 읽는 분들도 많죠. 이 책은 그런 카프카에 대해 서술한 독일의 카프카 전기 작가 라이너 슈타흐의 저서 입니다. 카프카에 대한 99가지 습득물을 모아놓은 책이라고 하는데 습득물의 종류가 다양합니다. 카프카가 대학 입학 시험때 커닝을 했었던 사실을 고백한 편지 내용이라든지, 평범한 성적을 기록했던 카프카의 성적표라든지, 사창가를 들락거렸던 기록,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의 집 설계도를 그려놓은 스케치가 담겨 있고요. 책의 뒷부분에는 카프카가 친구인 막스 브로트에게 남긴 유서 두 장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막스 브로트는 자신의 작품을 불태워달라는 카프카의 청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죠. 카프카의 입장에서는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문학사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큰 선물을 받은 것과 같을텐데요. 이런 점도 무척이나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달의 Book Trailer

『그래도 괜찮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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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조용하다고 생각한 소녀가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원래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한 소녀는 나중에야 자신만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싶었던 소녀는 자신 대신 소리를 들어줄 귀가 큰 토끼 ‘베니’를 그리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자신이 만들어낸 토끼 ‘베니’와 함께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한 소녀에 대한 희망과 그림에 대한 것이다.

 

그녀가 잘할 수 있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뿐이었다. 조금씩 자신의 그림을 알리고 유명해지기도 한 그녀는 자신 대신 많은 일을 해주는 토끼 ‘베니’에게 감사해하며 유쾌하게 살아간다. 그렇지만 몇 년 전, 그녀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유전적 병인 이 병은 점점 시야가 좁아지는 병으로 결국에는 아예 보이지 않게 되며 아직까지 치료법도 없다고 한다. 세상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조금씩 맺어가던 그녀는 이제 자신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사라지게 된다는 것에 슬퍼하지만 그 안에서 다시 희망을 찾는다.

 

언제나 유쾌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 그녀는 매일매일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행복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많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한다. 빛이 완전히 사라져도 그녀는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이다.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그녀는 그림을 그려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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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몸에 가까운 페미니즘 에세이라니, 지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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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어떨까요?” “괜찮은 것 같아요, 한번 생각해볼게요.” 언젠가 저자께 책 제목을 제안했다. 그러고 며칠 후였던가, 몇 달 후였던가. 습관처럼 들어간 페이스북에 저자의 새 글이 떴다. 글에는 이런 제목이 달려 있었다.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만들면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다. 물론 지극히 내 시점에서. 저자께서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묻지 않기로 하자. 산통 깨기 싫으니까.

 

아마 나뿐 아니라 적지 않은 편집자들이 저자 홍승은 님을 눈여겨봤을 것이다. 실제로 출간 제안을 드렸을 때, 저자 분은 이미 한 출판사로부터 동생인 홍승희 님과 함께 페미니즘 책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고 고민하던 차였다. 어떤 말로 저자를 유혹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과 선생님 동생 두 분 글의 결이 다르니 같이 쓰기보다는 따로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혹시 제가 남자 편집자라 불편하다면 초기 기획 단계에서만 저와 함께 하시고, 편집 과정에서는 여자 편집자와 작업하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대답을 기다리며 두근두근하기를 며칠, 드디어 답이 왔다. “선생님과 같이 작업해보고 싶어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후에 저자께서는 ‘여자 편집자와 작업할 수 있게 하겠다’는 배려 어린 말에 나와 함께할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인연을 시작하자마자 내 출간 제안과 무관하게 저자께 고정 연재처가 생겼다. 또 저자 분과의 두 번째 미팅 자리에서 “선생님 글을 읽다 보면 보라색 느낌이 나요. 책의 전반적인 색감은 보랏빛으로 가면 어떨까요?”라는 나의 얘기에, 저자 분과 당시 함께 자리했던 동생 분이 동시에 환하게 웃으며 “저희도 보라색이 좋겠다고 얘기했었어요”라고 답했다. 그런 연유로, 운명론자인 나는 이 책이 내 손을 거쳐 나올 운명이었다고 우겨보고 싶다.


좋은 신인 저자를 발견하고 끝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측면에서 기획자로서의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다만 편집자로서는 아쉬웠다. 저자의 글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아까워서, 편집자인 내가 글을 살려두자고 하고 저자는 빼자고 하는 웃지 못할 역할 전도 현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더 덜어냈으면 좋았을 부분들이 뒤늦게 보이기도 한다. 구성하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아 좀 헤맸고, 디자인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도자료 쓸 때도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 절반 정도 썼을 때 이미 ‘보도자료’가 아닌 ‘작품해설’ 분량이었으니까. 부끄럽지만 이번엔 저자의 글이 가진 힘에 좀 묻어가고, 다음 책을 정말 잘 만들어드리기로 한다. 다음 책도 나랑 하시라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미리 깔아놓는다.

 

홍승은 님의 글은 자신의 내밀한 얘기를 풀어놓은 에세이지만, 부제처럼 “페미니즘 에세이”다 보니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잔잔하고 편안한 글은 아니다. 저자가 때론 부드럽게, 때론 격정적이고 직설적으로 던지는 메시지들은 불편하다.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저자 분의 글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폭 빠져서 읽게 하는 힘이 있다.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고, 너무 과하지 않을 만큼 뜨거우며, 충분히 따뜻하다. 이 책을 기획한 건 저자의 글이 좋아서였지 페미니즘의 인기에 편승한 게 아니다. 소위 ‘페미니즘 열풍’은 내가 우리 회사에서 이 책을 내기 위해 다른 구성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들었을 뿐이다.


사실 출판 시장에서 페미니즘 열풍을 주도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나쁜 페미니스트』같은 에세이들을 보면서 조금 아쉬웠다. 그 책들에 보편성이 있어서 사람들이 반응했겠지만, 아무래도 외국 저자가 외국의 사례로 이야기를 펼치다 보니 제대로 공감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르가 다르긴 하지만『82년생 김지영』이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은 이유 중 하나가 그런 빈틈을 메워줬기 때문 아닐까 싶다. 한국사회에서 살아온 보통의 여성이라면 『82년생 김지영』에 그랬던 것처럼 이 책에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공감하는 걸 넘어 위안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저자가 단지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고 직시하는 것을 넘어, 한국사회 저변에 깔린 여성혐오 같은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동시대를 사는 모든 여성들에게 말해주니까.

 

편집자 인생에서 두 번째로 기획한 책이지만, 스스로 독자로서 너무 읽고 싶고 또 갖고 싶어 기획한 책으로는 첫 번째다. 기존 페미니즘 독자를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의 손에 이 책이 들려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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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리뷰 대전] 존 버거, 그가 남긴 모든 언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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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는 농사를 직접 짓는 손으로 드로잉을 그리고, 글을 쓰며, 무심히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썼던 11편의 글 역시 그의 삶과 꼭 닮았다.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는 존 버거의 선명한 「자화상」 그리기로 시작한다. 팔십 년간 글을 써온 그는 자신에게 문학이란, 글이란, 언어란 무엇인지 담담히 고백한다. '작가’처럼 꾸미지 않고 ‘이야기꾼’답게 편지를 쓰듯 간결하게 써내려 간 행간과 행간 사이에서 나는 시를 해독하는 마음으로 오래 머문다. 그 사이에는 세계를, 자연을, 인간을, 이방인을 사랑하는 숨결이 녹아나 있다.

 

에세이 속에서 우리는 눈에 미처 보이지 않았던 장면들을 능숙하게 끄집어 내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의 달인 존 버거의 안내를 받는다. 안내자로서 그는 희망을 말한다. 폴란드 출신의 이방인이자 독일 혁명가였던 로자 룩셈부르크의 “나는 있었고, 지금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를 인용하면서. 그리고 실패의 연속성을 찰리 채플린의 넘어지는 모습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불멸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 뿐인가. 야스민 함단의 아름다운 목소리에서 노래의 언어를 감지하고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꽃을 오랜 기간 보고 그리며, 그 대상 자체가 되어 모국어로 자연을 말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이리저리 그를 따라가다 우리도 대상의 언어에 흠뻑 빠져 버리고야 만다.

 

또한, 그는 연대의 매력적인 제안자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이. 그는 카뮈의 『최초의 인간』을 읽으며, 인간들은 모두가 고아이기에 공모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고아인 우리는 모든 위계를 거부하고, 지금껏 당연하다 여겨온 기존의 질서를 무시하고, 세계를 잘 헤쳐나갈 수 있는 당돌함을 가졌으니. 신기하게도 외톨이 고아들이 모여 연대하는 이 과정에서 계속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배워나간다. 하나의 별의 반짝임도 아름답지만, 수많은 별들이 모여 만든 은하수의 광경에 모두 할 말을 잃어 버린다.

 

아쉽게도 존 버거는 그가 살던 시골마을 시간대로 2017년 1월 2일에 세상을 영영 떠나고야 말았다. 새해가 얼마 지나지 않는 날이었다.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것들”을 찾아 틈을 메우는 그의 작업과 시선을 존 버거라는 이름으로는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대한다. “우리가 아는 그 모든 언어로 칭찬하고, 욕하고, 저주하는 일을 멈추지 말라”는 제안을 받아들인 이들이 오늘도 자신의 책상에서 본인의 언어로 발견되어야 할 것들을 묵묵히 쓸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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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리뷰 대전] 쓰다 보니 똑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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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글을 써왔지만, 어떤 글도 쉽게 써보지 못했다. 고통의 정도는 때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정량의 고통을 넘겨야만 글 하나가 겨우 완성된다는 점에서는 똑같이 고통스럽다.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써야 할 때는 두려움에 휩싸이고, 의견이 없는 주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해야 할 때는 어물쩍 알맹이 없는 주장을 해버린다. 별로인 글은 쓰는 사람이 제일 먼저 알게 마련인데, 그때의 기분은 참담하다. 손을 보긴 봐야겠는데,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고통만 있고 남은 글은 없을 때, 어떻게 다시 글을 써 나갈 수 있을까. 

 

저자는 글쓰기에 있어 이런 두려움과 고통을 정확하게 꿰뚫는다. 크게 두 가지, 쓰기 자체에 대한 두려움과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쓰는 것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리가 글쓰기를 배운 건 국어 시간이었다. 수학, 과학 시간에는 복잡한 수식이나 공식을 푸는 것만 중요했다. 저자는 학교의 모든 과목에서 필수적으로 글쓰기를 가르친다면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확연히 줄어들 거라며, 글쓰기와 생각하기, 배움이 동일한 과정임을 주장한다. 두서 없이 시작한 글도 결국엔 한 방향성을 갖게 되듯이, 모호했던 개념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책의 2부에는 다윈과 아인슈타인의 글을 포함해, 미술과 음악, 수학, 화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모범이 될 만한 글들이 소개되어 있다. 화학 분야의 잘 쓰인 글은 미술사 분야의 잘 쓰인 글과 동일한 글쓰기 원리를 따른다. 명료하게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배열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글을 잘 쓰기 위해 꼭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글쓰기는 뛰어난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도구가 아니라, 그저 생각을 종이 위에 정리하여 표현하는 단순한 기법이라고 말이다.

 

다윈이 관찰한 바를 글로 기록함으로써 바다이구아나에 대한 이론을 세웠던 것처럼, 글을 쓰다 보면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되고, 그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한 좋은 거름이 된다. 책의 난이도와는 별개로, 읽은 후에 간단하게라도 메모를 해두었던 책의 내용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거창한 리뷰가 아니더라도 나만의 문장을 써내려 가는 과정에서 그 내용을 어떤 식으로든 이해했기 때문일 거다. 글쓰기에서 생각하기를 거쳐 배움에 까지 이른 것이다. 무척 괴로워하며 글을 썼지만, 결국에는 쓰다 보니 똑똑해졌다!

 

“나는 글을 쓰는 과정 자체는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침내 글을 끝냈을 때, 마치 수학 문제의 풀이 답안처럼 그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한 한 편의 글을 완성했을 때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글쓰기만큼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작업도 없을 것이다.”

 

즐거움을 최대한 미루면서, 오늘도 늦은 퇴근을 한다. 글을 쓰면서 머릿속에서 정리된 개념들은 글쓴이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에 글쓰기는 자존감을 높여준다는 저자의 말처럼, 글 한 편을 겨우 겨우 완성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간신히 지켜냈다. 끝나기 전까지는, 언제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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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리뷰 대전] 당장 책상 위에서 시작하는 나만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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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취미 삼아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대단하다는 말과 함께 "나는 돈도 없는데 언제 그런 거 해보지?"라는 한숨 섞인 소리가 돌아왔다. 돈 없고 시간 없는 요즘 사람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활기를 불어넣을 작은 자극제라면 그리 멀지 않은 데에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가령 연필을 너무 사랑해서 15년 동안 다큐멘터리를 기획한 이 연필 애호가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래, 나는 연필이다』는 연필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실제로 다른 제목으로 방영된 적이 있는 다큐멘터리를 기획자가 취재 내용을 확장시켜 책으로 써냈다. 표지부터 강렬하게 온몸으로 책이 아니고 연필임을 주장하는 것만 같다. 새하얀 종이 위에서 자기를 새롭게 바라봐 달라고 연필이 말을 걸어 온다.

 

저자는 연필이라는 공통 소재를 두고 서로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는 9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작가와 예술가, 애니메이터처럼 연필과 가까울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지만 엔지니어나 박물관 관장처럼 예상 밖의 사람도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면 역시 연필 깎기 전문가 데이비드 리스가 아닐까? 그는 말 그대로 연필을 깎아 주는 일을 한다. 당연히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다. 연필을 깎는 과정에서 나오는 연필밥이나 흑연 가루도 버리지 않고 밀봉하여 돌려주는 것은 물론, 언제 어떤 연필깎이를 이용해서 어떤 형태로 깎았는지, 뾰족한 정도와 조도를 함께 기록한 보증서도 발행한다. 그가 사용하는 연필깎이 중에는 수십만 원짜리 수제품도 있다. 이 얼토당토않아 보이는 일에 맡겨진 연필만 연 평균 500자루. 자루 당 수만 원의 비용을 받는데도, 개중에는 바다를 건너 오는 것들도 있다. 그의 작업에 호기심을 보이거나 공감하는 사람이 그만큼은 있다는 뜻이리라.

 

흔하디 흔한 작은 사물에 대한 관심이 때론 우리의 삶을 환기시킨다. 데이비드 리스나 저자처럼 일 자체를 즐겨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보는 창에 덧씌울 스크린이 되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상가이자 문학가로 알려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를 보는데 연필을 대입시키면 재미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원래 연필 공장 사장의 아들이었다. 문학가이기 이전에 공학자였으며, 실제로 연필을 생산하기도 했다. 그의 저작 중 [시민의 불복종]은 공학자로 일하던 시절 쓰인 것이기도 하다. 공장이라고는 해도 가내수공업 규모의 작은 공장이었기에 그가 사망한 이후 유지되지는 못했다. 운명이 약간만 틀어졌더라면 오늘날 스테들러 연필 대신 소로우 연필을 더 일상적으로 구경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재미난 상상을 하게 된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것'에 대한 힌트는 추억 속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책에 끌린 이유 역시 작은 실마리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칼로 연필을 깎곤 했는데, 항상 못생긴 결과물만 보다가 매끄러운 성공작을 만들었을 때 처음으로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이들이 연필에 이토록 애정을 보내는 것도 어쩌면 학생 시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익숙하게 들어왔던 사각사각하는 소리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누군가는 이 연필 예찬가들과 달리 글은 만년필로 써야 제 맛이라 생각하며, 손편지도 안 쓰는 요즘 세상에 디지털을 선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추억 조각 속에서 나만의 즐거움을 찾는 일이다. 당장 책상에서 시작할 수 있는 이 연필에 대한 탐구처럼, 돈도 시간도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당신만의 마니아틱한 즐거움을 찾아보길 바란다. 그 순간 세상이 새롭게 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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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글징글한 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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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문장(안 이후 로소 보이는문장)

 

그는 이 사랑이, 자기 아들에 대한 이 맹목적인 사랑이, 일종의 번뇌요, 매우 인간적인 어떤 것이라는 사실과, 또한 이 사랑이 윤회요, 흐릿한 슬픔의 원천이요, 시커먼 강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와 동시에, 그 사랑이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사랑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자신의 본질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느꼈다. 이러한 쾌락도 만족시키고 싶었으며, 이러한 고통도 맛보고 싶었으며, 이런 어리석은 짓도 저질러보고 싶었다.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179 쪽

 

1.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고 2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뭐하세요?” 라는 형식적인 질문에, “뭐하긴, 일하지”라고 또한 형식적인 답을 했지만 그 사이에 내 머릿속에는 생전 전화 한 통 없던 아들의 이 살가운 저의를 추리하고 있었다. 용돈이 떨어진 것일까, 아니면 무슨 사고라도 친 것일까, 두 가지를 빠르게 생각했으나, “아빠, 지금 학교에 와 주실 수 있으세요?”라는 말에 가슴부터 철렁 내려앉았다.

 

친구와 싸웠다고 했다. 친구는 아버지가 병원에 데리고 갔고 경찰서에 신고한다는 말도 했다고 전한다. 아들은 말을 더듬고 조금은 떨고 있었다. 서로 얼마나 다쳤는지를 물었고,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말에 우선은 안도하며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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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드라마 <통 메모리즈>의  한 장면


강변북로는 봄으로 화사했으나 마음이 지옥이니 길가에 꽃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몇 년의 방황 끝에 또래보다 일년 늦게 2학년이 되었다. 작년에는 아침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아이가 잘 일어나서 학교를 가면 천국, 그렇지 않으면 지옥이었다. 다행히 1학기보다는 2학기가 출석률이 좋았고, 올해는 단 한번의 지각도 없이 학교를 가는 것이 그저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교무실에 있었다.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두 녀석이 쓴 진술서도 봤다. 아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고 둘이 몸싸움을 했다. 그 과정에 아들은 가슴이 밀렸고 친구는 목이 긁혔다. 선생님은 말했다. 아이들끼리 있을 수 있는 일이나, 저쪽 부모님이 몹시 화가 나셔서 강경한 조치를 원합니다. 선생님에게 이유가 무엇이든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아프다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갔다.

 

차 안에서 아들은 억울하다고 했고, 전학이나 경찰서에 가야 하는지를 불안해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아들은 좀 더 차분해졌고, 아들의 불안감을 달래줬고, 친구의 입장에서 생각한 후 사과를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아이를 다시 학교에 데려다 주고 회사로 가는 길에 아이 친구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 분 역시 속상하고 놀랐을 거라는 생각에 내 마음이 더 속상했다. 얼마 후에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빠, 선생님이 걱정하지 말래요. 친구에게 먼저 욕한 것을 사과하겠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강변북로의 벚꽃이 이제야 다시 보이기 시작한 것은, 몇 시간 동안의 걱정과 불안이 잘 해결되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선생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얼굴 한 번 본 적없는 아들 친구의 아버지에게 죄인처럼 잘못을 빌 때, 부아도 치밀었고 자존심도 상했으며 자식 새끼 낳아서 이런 뒷치닥거리를 하는 내 팔자가 한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의 방황이 한창일 때, 쉼터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찾아간 부모를 외면하던 아이였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자기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고 부모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던 아이였다. 그 애가 이제 혹시라도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될까 봐 겁내 하며, 아버지에게 SOS를 치고 있다. 나는 아들의 그 다가옴이 너무 기쁘고 고맙고 대견했던 것이다. 자식에게 눈 멀은 고슴도치 부정(父情)이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

 

1922년에 ‘헤르만 헤세’가 발표한 『싯다르타』는 종교적 성장 소설이다. 실제 붓다의 출가 전 이름을 제목으로 가지고 왔고, 주인공으로 등장시켰지만 헷세의 ‘싯다르타’와 붓다 ‘싯다르타’는 유사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다.

 

붓다가 왕자로 태어나 29세에 출가하고 6년의 고행 끝에 그 한계를 절감한 후 수행과 명상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45년 동안 설법했다면 헷세의 ‘싯다르타’는 훨씬 다이나믹하다.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자아를 찾아 친구와 집을 나가고 사문들과 함께 지내며 실제 붓다를 만나기도 했으나 진리는 가르침이 아닌 경험 속에서 체득되야 한다며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카말라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육체적 쾌락에 빠지기도 하고 장사꾼이 되어서 도박과 향락에 빠지지만 그것의 허무함을 깨닫고 뱃사공이 된다. 강에서 명상하며 현상의 양면성과 시간의 일체성 등을 깨닫는데, 이쯤 되면 헷세의 ‘싯다르타’는 불교의 무상함과 도교의 무위자연, 기독교의 사랑과 칸트의 경험주의를 총 망라한 인물이 되는 셈이다.

 

특히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붓다 ‘싯다르타’와 헷세 ‘싯다르타’가 아들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점인데 16세에 결혼을 한 붓다는 자신의 출가에 장애가 되는 존재라며 아들의 이름을 장애라는 뜻을 가진 ‘라훌라’라고 지었다. 반면 헷세의 ‘싯다르타’는 아들 바보다.

 

열한 살 먹은 아들을 다시 만났을 때, 아들은 아버지를 거부하고, 멸시하고, 조롱하고, 반항한다. 아버지는 그것을 기꺼히 다 받아낸다. 살면서 무언가에 완전히 빠지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아들 때문에 싯다르타는 어린애 같이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들은 집을 나가고, 싯다르타는 아들을 찾아 숲을 헤매고, 아들을 그리워하며 그 상처로 사는 존재가 헷세의 ‘싯타르타’다.

 

3.

 

소설을 읽은 후 문득 이렇게 자문한다.

 

사고를 치고 아빠를 놀라게 하는 아들은 내 삶의 장애일까, 혹은 기쁨일까.

 

돌이켜보면 태어나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온전히 기쁨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지금까지는 기쁨보다 한숨과 고통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늘, 아들이 없을 때, 저 웬수를 낳아서 내 삶이 이리 장애롭구나, 라며 속으로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딱 들어서는 순간, 그 얼굴을 슬쩍 보는 순간, 장애는 사라지고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안쓰러움이 먼저 생기며 사계절 내내 애비 마음에 꽃봉오리를 팡 하고 터트리게 하는 것, 그게 새끼라는 이름의 요물이지 싶다. 아주 징글징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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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한문 그리고 한자어와 한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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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한자와 한문


앞서, ‘사’ 자 뒤에 붙는 한자에 따라서, 각종 자격이나 직책의 성격이 구분되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그처럼 한자는 간단한 한 글자일 뿐인데도 그 의미가 무척 달라질 정도로 함축적입니다. 그만큼 쓸모도 많습니다.

 

지난해 한글날의 일입니다. 모 방송국에서 서울의 어느 대학교에 찾아가 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을 한자로 써 보라고 하면서 그 결과를 방송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이른바 일류대라고 하는 학교였음에도, 그것을 바르게 쓴 학생들은 매우 드물었고, 모든 획을 정확하게 쓴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韓’은 그리다시피 해서 간신히 꿰맞춘 것까지도 정답 처리를 해주어서야 겨우 몇 사람이 합격(?)했습니다.

 

그때 답 쓰기를 포기했거나 제대로 쓰지 못한 학생들의 입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들이 나왔습니다. “한문은 어려워요.” “우리는 한문을 배우지 않았어요.”

 

대한민국을 大韓民國으로 적는 것은 한문을 쓰는 게 아니라 한자로 적는 것일 뿐입니다. 한자와 한문은 엄연히 다릅니다. 한자어와 한문도 다릅니다. 그 차이점들을 들여다보기로 하죠.

 

한자(漢字)는 중국에서 만들어 오늘날에도 쓰고 있는 ‘문자’를 말하는데, 일종의 표기 도구죠. 그 때문에 그걸 사용하는 국가마다 조금씩 서체가 다를 수도 있고 그걸 뭉뚱그려 이르는 말도 다릅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지안지’를 사용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일본식 약자체인 ‘신자체’를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우리 나름으로 만든 약자를 포함한 ‘통용 한자’를 제정하여 사용 중입니다. 즉,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한자를 중국에서는 ‘지안지’체, 일본에서는 ‘신자체’라 하고 우리나라는 ‘통용 한자’라고 부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나라에는 그 나라에서만 사용되는 새로운 한자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한자에도 우리가 만들어서 우리만 쓰고 있는 글자들도 제법 됩니다. 예를 들면 乭(돌)ㆍ串(곶)ㆍ畓(답)ㆍ垈(대)ㆍ洑(보)…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국산(?) 한자는 다른 나라에서 알아보지도 못하고,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어 유명한 바둑 선수 ‘이세돌’의 우리식 표기는 李世乭이지만, 중국에서는 선수 명단에 李世石으로 표기합니다. 乭이라는 한자가 중국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문(漢文)이란 ‘한자(漢字)만으로 쓰인 문장이나 문학’을 뜻합니다. 즉, 한글이 전혀 쓰이지 않는다는 점과 낱말이 아닌 문장(글)을 뜻한다는 두 가지 점이 특징이면서, 한자어와 구별되는 사항이기도 하죠.

 

한자어와 한문

 

한편 우리말에서의 한자어(漢字語)는 이러한 ‘한자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말’인데, 그 표기는 한글로 하고 필요할 경우에만 괄호 안에 우리나라 식의 한자를 사용하여 한자 표기를 덧붙입니다(한자 병기). 즉,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한자어는 한글로 표기되므로(필요할 경우에만 한자를 부기) 한자로만 표기되는 한문과는 다르고, 우리말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한자어를 자칫 한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크게 잘못이죠. 위의 학생들처럼 그런 실수들이 잦은데, 그리해서는 안 됩니다.

한자어와 한문의 차이와 관련하여 좀 더 말씀드릴게요.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좋겠군요. 우리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시 작품 중에도 제목이 한문으로 되어 있는 게 있다는 것, 생각해 보신 적 없으시죠? 김소월의 ‘산유화(山有花)’가 바로 그것이랍니다.

 

한문으로 ‘산에 꽃이 있습니다.’를 표기하면 두 가지가 되는데요. ‘화재산(花在山)’과 ‘산유화(山有花)’가 그것이죠. ‘山有花’에서 주어가 뒤에 있는 것은 한문에서 동사 ‘있다’의 뜻을 나타내는 ‘有’는 어법상 주어가 도치되게 마련이어서 부사어구가 주어 앞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현대 중국어에서도 마찬가지랍니다. 이를테면 ‘책상 위에 사전 한 권이 있다’를 중국식 한문으로 적으면 ‘탁자상유일본사전’이 되는데 부사구 ‘책상 위’가 주어의 앞에 놓입니다. 반면, 동사를 ‘有’ 대신 ‘在’를 사용하면 주어가 도치되지 않아서 ‘花在山’이 됩니다.

 

따라서 ‘산유화’는 산에 있는 꽃, 즉 ‘산꽃(≒山花)’을 뜻하는 한자어 명사가 아니라, 시의 첫 구이기도 한 ‘산에는 꽃 피네/꽃이 피네’를 한문으로 요약/번역한 제목입니다. ‘산유화’라는 꽃 이름이 우리말에는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산꽃’을 뜻하는 말도 아니기 때문이죠. ‘산꽃’을 뜻하는 한자어로는 ‘산화(山花)’만 있습니다. [단, ‘산유화’가 ‘메나리(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지방에 전해 오는 농부가의 하나)’를 뜻할 때는 두 말이 동의어이며, 명사가 됩니다.]

 

이제 한자어와 한문의 차이를 확실하게 이해하시는 데에 도움이 되었는지요?

 

우리말에서의 한자어의 위상

 

우리말에서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율이나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일반명사만 기준으로 하면 70% 이상이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한자어들을 익히는 데서 한자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아주 큽니다. 한자를 모르고는 정확한 뜻풀이는커녕 우리말 공부를 하는 데에서도 지장이 많습니다. 심지어 소경이 문고리 잡듯 해야 할 때도 많다고 비유하는 이도 있지요. 

 

그러므로 한자어를 공부할 때 무조건 낱말을 암기하려 들기보다는 한자를 익히거나 관련 한자를 떠올려 보는 것이 요긴할 때가 많습니다. 그 낱말에 쓰이는 한자를 정확히 알고 있거나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올바른 낱말을 고를 수 있거나 왜 잘못된 것인지 이해가 빨라지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중국어가 아닌 우리 식의) 한자를 익히라는 말을 하는 것이랍니다.

 

손쉬운 예로, ‘성대묘사’는 ‘성대모사’의 잘못인데요. ‘모사(模寫)’는 ‘사물을 형체 그대로 그리거나 본을 떠서 똑같이 그림. 또는 원본을 베끼는 것’이고, ‘묘사(描寫)’는 ‘어떤 대상을 언어나 그림 따위로 표현하는 것’이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소리로 다른 사람이나 동물을 흉내 내는 것은 ‘묘사’가 아니라 ‘모사’여야 한다는 걸 한자 뜻풀이를 통하면 비교적 손쉽게,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 같은 이유 때문에 한자를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모사(模寫)’에 사용된 한자 ‘模’가 베끼거나 본뜨거나 흉내 낸다는 뜻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 다음과 같은 수많은 관련어들의 익힘이나 추론과 활용, 나아가 전문어의 신어 조어에서도 매우 편리해진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모형(模型/模形) : 실물을 모방하여 만든 물건. ⇒모형도(模型圖)/모형판(模型板)/모형기(模型機)/모형선(模型船)/모형화(模型化)/모형실험(模型實驗)≒모의실험/모형시험조(模型試驗槽)/모형무대(模型舞臺)/모형계기분석(模型繼起分析)≒인과순환분석(因果循環分析)
모범(模範) : 본받아 배울 만한 대상. ⇒모범생/모범수(模範囚)/모범적(模範的)/모범림(模範林)/모범촌(模範村)/모범상(模範賞)/모범택시(模範taxi)/모범학교(模範學校)
모방(模倣) : 다른 것을 본뜨거나 본받음. ⇒모방자(模倣者)/모방작(模倣作)/모방설(模倣說)/모방색(模倣色)/모방주의/모방예술/모방유희(模倣遊戱)
모의(模擬) : 실제의 것을 흉내 내어 그대로 해 봄. 또는 그런 일. ⇒모의점(模擬店)/모의총(模擬銃)/모의탄(模擬彈)/모의전(模擬戰)/모의고사(模擬考査)≒모의시험(模擬試驗)/모의실험(模擬實驗)/모의국회(模擬國會)/모의재판(模擬裁判)/모의수업(模擬授業)/모의송전선(模擬送電線)
모작(模作)≒모제(模製/摸製)  : 남의 작품을 그대로 본떠서 만듦. 또는 그 작품.
모창(模唱) : 남의 노래를 흉내 내는 일.
모조(模造) : 이미 있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본떠서 만듦. 또는 그런 것. ⇒모조품(模造品)/모조석(模造石)≒인조석(人造石)/모조지(模造紙)/모조금(模造金)/모조백금(模造白金)/모조진주(模造眞珠)
모각(模刻) : 이미 있는 조각 작품을 보고 그대로 본떠 새김. ⇒모각본(模刻本)
모상(模像) : 모방하여 만든 상.
모법(模法) : 방법을 본뜸.

 

‘이용(利用)’이란 말을 오용/악용 말고, 함부로 변용하지도 말자

 

한자어의 다양한 활용력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기로 합니다. 손쉬운 한자인 ‘쓸 용(用)’이 들어간 말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가장 흔한 이용(利用)이 있습니다. 본래 이롭게 씀을 뜻하는 말입니다. 조선시대의 실학을 규정할 때면 실사구시(實事求是.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와 이용후생(利用厚生. 기구를 편리하게 쓰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넉넉하게 하여, 국민의 생활을 나아지게 함)이란 말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데요. 그때의 이용후생(利用厚生)에서 쓰인 것과 같은 좋은 의미의 말입니다. 무척 유용(有用)한 말이기도 하죠.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 말이 ‘그럴 때만 나를 이용하려 드는 나쁜 사람’과 같은 데서처럼, ‘다른 사람/대상을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방편(方便)으로 씀’을 뜻으로 말로도 쓰이게 되었습니다. 본래 좋은 뜻의 말이 아주 나쁜 뜻의 말로 바뀌어 쓰이게 된 거죠. 지금은 본디 뜻보다도 변형된 뜻으로 더 많이 쓰이는 듯도 합니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 역시 그 활용(活用. 충분히 잘 이용함)에 있어서 제대로 잘 선용(善用. 알맞게 쓰거나 좋은 일에 씀. ‘바르게 씀’으로 순화)해야 합니다. 오용(誤用. 잘못 사용함)되거나 남용(濫用. ①일정한 기준/한도를 넘어서 함부로 씀. ②권리/권한 따위를 본래의 목적/범위를 벗어나 함부로 행사함)되어서도 안 되겠고요. 영어에서도 ‘오용’과 ‘남용’을 구별하기 위하여 ‘-use’ 뒤에 각각 다른 접두어를 붙여서, ‘misuse’와 ‘abuse’로 달리 쓰고 있지요. 아동 학대를 ‘child abuse’라 하는 것처럼요.

 

언어생활에서 잘못된 말인 줄도 모르고 난용(亂用. 정해진 용도의 범위를 벗어나 아무 데나 함부로 씀)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나쁜 뜻으로 변용되어 쓰이는 말인 줄도 모른 채 그런 말들을 과용(過用. 정도에 지나치게 씀)하게 되면, 생각 없이 사는 일로 손쉽게 이어지기도 합니다. 언어 앞에서 이따금 차렷 자세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그래서도 필요하지요. 그런 일은 뜻밖으로 우리의 내면에 즐거운 긴장을 더하기도 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낱말 정리] ‘-용(用)’이 쓰인 말들
이용(利用) : ①대상을 필요에 따라 이롭게 씀. ②다른 사람/대상을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방편(方便)으로 씀.
유용(有用) : 쓸모가 있음.
유용(流用) : ①남의 것이나 다른 곳에 쓰기로 되어 있는 것을 다른 데로 돌려씀. ②세출 예산에 정한 부(部)/관(款)/항(項)/목(目)/절(節)의 구분 가운데 목과 절의  경비에 관하여 각각 상호 간에 다른 데로 돌려쓰는 일.
활용(活用) :  충분히 잘 이용함
선용(善用) :  알맞게 쓰거나 좋은 일에 씀. ‘바르게 씀’으로 순화
오용(誤用) : 잘못 사용함.
남용(濫用) :  ①일정한 기준/한도를 넘어서 함부로 씀. ②권리/권한 따위를 본래의 목적/범위를 벗어나 함부로 행사함
난용(亂用) : 정해진 용도의 범위를 벗어나 아무 데나 함부로 씀
과용(過用) : 정도에 지나치게 씀


 

 

열공 우리말최종희 저 | 원더박스
『열공 우리말』은 우리말에 대한 130가지 질문과 답을 통해 1천여 표제어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다시 그 표제어와 분류별, 유형별, 실생활 사용례별로 연관된 1만2천여 단어를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설명한 우리말 어휘 공부의 보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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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리뷰 대전] 일의 무게를 덜어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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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슨 일 하세요?” 선 자리에서나 주고 받는 말 같지만, 사실 우리가 누군가를 처음 만나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누면 자연스럽게 묻는 질문이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때 직업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대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심지어 나를 잘 아는 친구와 친척들조차도 나의 직업을 통해 요즘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소위 잘 나가는지를 규정하는 중요한 잣대로 여기기에 내가 좋건 싫건 상관없이 직업은 나를 반영하는 결정적 기준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일과 관련된 고민이나 불만은 연봉과 같은 물질적 조건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의 직업이 내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일에서 가치를 찾을 수 없을 때는 물론이고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 없을 때의 고민은 이루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을 담은 『미움받을 용기』로 최장 기간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기시미 이치로. 그가 이번에는 처음으로 우리의 삶에서 뗄 수 없는 ‘일’과 관련된 문제만을 중점적으로 다룬 책을 펴냈다. 제목부터 마음을 사로잡는 『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일에 대한 고민과 무게를 덜어내고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지혜를 선사한다. 일하는 것이 즐겁지 않은 사람, 직장 내 인간관계 때문에 괴로운 사람, 밀려드는 일에 짓눌린 사람 등 일과 관련된 숱한 고민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일의 의미와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등을 아들러의 심리학을 바탕으로 풀어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 것일까? 그에 말에 따르면 인간은 일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타인을 위해 쓰고 공헌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공헌감을 느끼고,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게 된다. 따라서 일한다는 것은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노동의 분업을 통해 인간관계로 들어가 사는 기쁨을 느끼고 행복해질 수 있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본래 타인과의 관계를 도외시하고는 행복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렇게 일의 의미를 공헌감과 자신의 가치를 느끼는 것에 두게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밖에 없다’며 꼭 그 일을 고집할 필요도, ‘나만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질 필요도 없어진다. 일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면 고민과 갈등이 풀리고, 자연스레 새로운 길도 열리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일하기 위해 사는 걸까, 살기 위해 일하는 걸까’와 같은 회의가 들 때가 있다. 저자는 이 물음에 단연코 인간은 생존이 아닌 잘 살아가기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또한 나의 가치가 생산성에 있지 않다고 강조하며, 상사의 안색을 살필 필요도, 타자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일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우리의 일생이 너무 단순하고, 안쓰럽기 짝이 없지 않은가? 때문에 난 우리가 살아있음을,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는 그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싶다. 그리고 그의 지혜가 모두에게 맞닿아 위안을 선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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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리뷰 대전] BYE-BYE MY 울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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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과의 작별은 너무도 슬픈 일이다. 특히 그 사람이 너무나 강렬하고 좋은 추억을 남긴 경우 아쉬움은 더 크다. 맨 중의 맨 ‘휴 잭맨’이 17년간 연기했던 울버린을 뒤로 한다. 뜨거운 안녕은 울버린을 탄생시킨 그래픽 노블을 다시 꺼내는 일로 시작해본다. 휴 잭맨 주연의 마지막 울버린 영화 ‘로건’은 『울버린: 올드맨 로건』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여느 원작들이 그렇듯이 주요 모티브를 따왔을 뿐 영화와 내용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울버린: 올드맨 로건』은 영웅이 사라진 시대, 늙고 지친 ‘울버린’이라는 주요한 컨셉이 축을 이루고 있으며 영화에서 소개되어 있지 않은 왜 울버린이 그렇게 변했는가에 대한 뒷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마블 영화에서 이 세계관을 어떻게 변형해 반영할 지는 새로운 울버린으로 만나봐야 알게 될 듯 하지만 말이다. 자신의 힘을 잊은 듯 울버린이 대륙의 서부를 지배하는 헐크 가족에게 두들겨 맞거나 모욕을 당하며 사는 부분은 답답하지만, 오랜 친구 호크 아이를 만나 생활고를 이겨내기 위해 새로운 여행을 떠나면서 독자들은 마치 영웅의 새로운 모험에 동참하는 듯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모험에 숨겨졌던 의도가 드러나고 뜻대로 되어가지 않고 상황은 꼬여간다. 절대절명의 순간을 맞이해 악당 스컬의 은신처에서 발견해낸 무기들로 예상하지 못한 반격을 펼치는 장면은 가장 짜릿한 반전이다. 마치 만화 내내 독자들이 기다리지만 나타나지 않았던 영웅들 모두를 대신해 싸우는 듯한 울버린의 전투씬이 압권으로 영화화가 가장 기대되는 포인트이다.

 

하지만『울버린: 올드맨 로건』속 늙은 울버린의 액션이 조금은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울버린 웨폰 X』를 통해 울버린이 탄생했던 시작점으로 돌아가보기를 추천한다. 영화 ‘로건’에서 시니컬하던 울버린이 꼬마 소녀의 발톱을 본 순간 그녀를 잡으려는 사람들에게서 그녀를 구하기 위해 온 몸을 내던질 수 밖에 없었는지는 그가 당했던 ‘익스페리먼트 X’라는 슈퍼 웨폰 프로젝트를 담은 『울버린 웨폰 X』를 통해 알 수 있다. 인간이 아닌 동물 취급을 당하며 아만타니움을 주입당했던 끝없는 전투 실험 과정이 담겨있다. 실험을 통해 로건에서 울버린으로 점점 변해가면서도 ‘로건’ 이라는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붙잡는 울버린에게 연민을 느끼며, 인간적인 고뇌를 간직한 히어로의 시작을 목격하게 된다.

 

이 두 권으로도 울버린을 보내기에는 너무 아쉽다면, 2013년 개봉되어 엑스맨 시리즈의 재미를 기대했던 관객들을 충격에 빠트렸던 영화 더 울버린과 같은 일본 배경이지만 울버린 캐릭터를 처음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의 시작이었던 프랭크 밀러의 『울버린』을 권한다. 닌자의 날카로운 칼과 어둠 속의 움직임, 울버린의 발톱은 묘한 대척점을 이루며 영화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예술적인 분위기까지 담아냈다. 그리고 아직 영화화되지 않은 부분을 보고 싶다면 영화상에서는 어벤져스에 합류하지 않은 울버린이지만, 만화 속에서는 어벤져스와 함께 싸우는 울버린 표 시빌워를 『울버린 : 시빌 워』를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울버린 웨폰 X』영화 로건 속 마지막 대사 “so this is how it feels”처럼…우리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영웅은 이렇게 한 시대를 마감한다. 우리에게 제 몸 하나 챙기기 각박한 세상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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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리뷰 대전] ‘쫌’ 이상한 당신이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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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보면 쉽게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는 습관이나 버릇이 있는가? 아니면 당연하게 하는 당신의 행동을 보고 친구가 ‘뭐해~ 너 쫌 이상해 지금!’ 한 적은? 그렇다면 웰컴! 당신은 ‘쫌’ 이상한 사람들의 일원이 될 자격이 있다. 기쁘게도 나도 일단은 ‘쫌’ 이상한 사람이다. 토요일 아침에는 달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신나게 춤을 춰야 주말인 것 같고, 달리는 차를 타고 다리 위를 지날 때 고래고래 소리치며 노래를 부르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서강대교를 지나는데 옆 차가 시끄럽다면 나일 수도 있으니 모른 척 해줬으면 좋겠다.

 

『쫌 이상한 사람들』에는 제목 그대로 조금은 이상해 보일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온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이상한 스텝을 밟으며 요리조리 길을 걷는 사람, 길을 건너다 갑자기 혀를 쭉 내밀고 괴상한 표정을 짓는 점잖은 아저씨, 모두 신나게 놀고 있는 놀이터 한 구석에서 나무를 꼬옥 안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어딘가 ‘쫌’ 이상한 사람들. 첫 눈에 의아하더라도 그림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곧 흐뭇한 미소를 띄우게 된다.

 

이상한 스텝으로 춤추듯 걷던 사람은 줄지어 지나가는 개미를 밟고 싶지않았다. 점잖은 옷을 입고 괴상망측한 표정을 짓던 아저씨는 옆 차에 타고 있던 꼬마를 웃게 해주고 싶었고, 놀이터 옆 나무를 꼭 끌어안고 있던 아이는 미끄럼틀이 되어준 나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관객이 한 명도 없지만 열정을 다해 연주하는 음악가들도 쫌 이상하지만 행복하고, 자전거를 타고 도착지를 향해 바쁘게 발을 놀리는 무리에서 벗어나 향긋한 차 한잔을 마시러 가는 사람들도 행복하다.

 

생각해보면 이런 사람들을 만난 적이 꽤 있다. 버스 기사님의 밝고 큰 아침인사에 깜짝 놀래다가도 하하 웃게 되고, 더운 여름 들어간 카페에서 옆 테이블 꼬마가 다가와 부채질을 해주면 에어컨만큼은 시원하지 않아도 더위로 인한 짜증이 확 가신다. 작가는 이 그림책을 통해 조금은 이상한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고, 생각보다 드물지 않게 눈에 띄며, 그들로 인해 세상이 따뜻해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파랑과 노랑, 몇 가지 색만을 사용해서 경쾌한 선으로 그려낸 ‘쫌’ 이상한 세상은 그 어떤 색보다 따뜻하고 밝다.

 

그림 속 무표정한 주위 사람들과 대비되어 쫌 이상한 사람들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유를 찾아낸 사람들도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책을 보던 나도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많이도 아니다. ‘쫌’ 이상해져서 스스로 행복하고 주위 사람들도 즐겁게 해줄 수 있다면. 어떤가? 한번 이상해져 볼 법 하지 않은가? 이미 이상한 당신이라면 남들의 시선에 주눅들지 말자. 당신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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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자궁을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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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 이벤트>의 한 장면

 

“저 엄마 왜 울어?”
“몰라. 아까부터 울더라.”

 

간호사들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가 멀어진다. 새벽 4시 32분 아이를 낳고 나는 분만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예닐곱 시간 산통 끝에 몸통은 거죽만 남은 듯 너덜너덜했다. 혀가 껄끄러워 입 안에 손가락을 넣었는데 노란 모래 가루 같은 입자가 묻어나왔다. 물 좀 달랬더니 간호사가 적신 거즈를 준다. 그걸 입술에 대고 있는데 눈물이 흘렀다. 무슨 스위치를 켠 것처럼 느닷없고 하염없이. 흐느낌도 통곡도 아닌 조용한 눈물의 방류를 간호사들이 본 모양이다.

 

이렇게 아픈데 엄마는 오빠를 낳고 어떻게 나를 또 낳았을까. 첫 아이 출산 때 정신이 돌아오고 처음 든 생각이다. 몸을 초과하는 통증에 몸서리쳤다. 그래 놓고 나는 또 둘째를 낳은 것이다. 동이 트자마자 남편이 양가에 전화를 드렸고, 엄마는 아침 7시 병실 문을 열고 뛰듯이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실룩거리던 엄마. 왈칵 눈물을 쏟으며 말한다. “고생했다. 애 낳는 게 얼마나 아픈데…”

 

삼칠일이 지나 산후도우미 아주머니가 가고 남편은 회사 일로 바쁘고 혼자 남겨졌다. 밤낮으로 두 아이 사이를 오가며 쩔쩔매던 어느 날, 아이를 재워놓고 방문을 닫는데 아이가 뒤척였다. 다시 토닥토닥하고 재우면 또 깨고 그러길 수차례. ‘잘 자라 우리 아가’를 입으로는 흥얼흥얼 등을 두드려주는데, 빨리 자라 좀 제발 하면서 손에 힘이 들어갔다. 등짝을 세게 한 번 내리쳤다. 손바닥에 꽉 차는 조그만 등의 느낌. 후끈했다. 그런 난폭함이 내 몸 어디에서 나왔는지 놀랐고 더 놀란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이는 분유도 이유식도 거부했다. 끼니마다 전쟁이 벌어졌다. 제발 한 입만 먹어라, 제발. 애원은 분노로 바뀌었다. 나는 분노에 못 이겨 소리를 지르며 손에 잡히는 대로 벽에 던졌다. 아기는 놀라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모든 게 지옥이었다.”

 

한 여성이 산후우울증을 호되게 앓았던 경험을 글쓰기 수업에서 발표했다. 저 대목에서 멈칫,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오래 전 화의 기운이 나를 덮쳤다. 행여나 들킬세라 과제물에 시선을 두었다. 낭독이 끝나고 고개를 들었더니 세상에나, 여기저기서 훌쩍훌쩍 손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휴지를 꺼내 코를 푼다. 각기 다른 연령대 여성들이 운다. 침묵을 깨고 한 명이 말문을 열었다. “남들은 척척 해내는 육아가 나는 왜 이렇게나 힘이 들까.” 이 문장이 특히 공감이 간다고, “그 말을 저는 남편에게 들었어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날 수업을 마치고 가는 길, 이 집단적 슬픔의 광경이 떨쳐지지 않았다. 지금도 육아의 고통을 자신의 모성 부족으로 탓하며 속울음 삼키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내 안의 폭력 성향이 불쑥 나타날 때 어떻게 잠재울까. 문득 엄마들을 모아서 ‘봉기蜂起’를 일으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충동적으로 페이스북에 봉기 단상을 올렸고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이토록 고된 육아를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수행한 선배 엄마들에 대한 원망, 육아로 인한 일상의 압박과 인격의 왜곡에 대한 토로가 족자처럼 펼쳐지는 와중에 한 줄 의견이 외롭게 버티고 있었다. ‘저도 봉기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내가 구상하는 봉기는 단순하다. 벌떼처럼 모여서 윙윙윙 떠들기다. 자기 공격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해석이 필요한 법이니, 내 목소리를 내보내고 내 삶에 다른 목소리가 흘러들게 하는 것이다. 육아의 기쁨만큼이나 슬픔을, 어린 생명이 주는 충만함만큼이나 자멸감을 저마다 말하기만 해도 자신이 비정상이 아님을 알고 적어도 자기 억압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나는 또 엄마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면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을 펼쳐서 읽어주고 싶다. 그간 젠더 불평등은 근원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지 난 회의적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깨인 남자, 페미니스트 배우자를 만나더라도 여자의 몸에서 임신과 출산이 이뤄지는 한 양육에 따른 최종 책임은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여자에게 귀속되더라는 것이다. 여자의 몸이 무거워지는 순간 필연적으로 삶도 무거워진다. 비출산 경향도 그걸 인지한 여성들의 선택일 거다. 이에 대한 여성의 구제 방안을 『성의 변증법』이 제시한다.

 

“남자는 땀 흘려 일하고 여자는 고통과 산고를 참아야 하는 이중 저주는 처음으로 인간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테크놀로지를 통해 해소될 것이다.”(292쪽) 저자가 말하는 테크놀로지는 인공 생식의 완전한 발달을 뜻한다. 즉, 인공 자궁에서 태아를 잉태함으로써 남성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해지도록 하자며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하여 여성을 생식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양육의 역할을 여성뿐 아니라 남성, 즉 사회 전체로 확산시킬 것.”(294쪽)을 요구한다.

 

스물다섯 살의 저자가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이 급진적 주장에 처음엔 놀랐지만 읽을수록 빠져들었다. 시험관 아기처럼 인공 자궁을 통한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인류의 반이 그들 모두의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한다”(293쪽)는 것에 근본적인 회의와 물음을 던진 점, 피임법이 개발되기 전 계속되는 출산으로 여성들이 끊임없는 부인병, 조로, 죽음을 겪는 현실의 단절을 꾀한 점, 온갖 지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대안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귀하게 다가온다.

 

『성의 변증법』은 1970년에 출간됐다. 40년이 흐른 지금, 남성 양육 역할 확대는 남성 육아휴직제로 논의, 실천되고 있으니 파이어스톤의 ‘혁명적 요구’가 비현실적인 대안이라고만 일축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고정 불변의 현실로 여기지 않고 다른 삶을 그려보는 태도를 배웠다.

 

가끔 생각난다. 분만실 침대 위에서 천장의 사나운 형광등 불빛에 시선을 고정한 채 눈물짓던 내 모습이. 귓속에 흘러들던 미지근한 눈물이. 무에 그리 서러웠을까. 애 낳은 게 뭐 대수라고 ‘저 엄마는 왜’ 눈물 한 바가지 흘리는지 나도 잘 몰라서 더 서글펐다. 그런 내게 “임신은 야만적이다. (…) 임신은 종을 위하여 개인의 육체가 임시로 기형이 되는 것이다”(287쪽)라는 말, 자연분만의 신화화를 비판하는 문장은 구원 같았다.

 

그날 나는 여자의 몸에서 발생하는 고통,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외로운 노동을 딸에게 고스란히 대물림한다는 사실이 아득하고 미안했던 것 같다. 엄마가 몸을 푼 나를 보자마자 울었듯이 나 역시 막 탯줄 끊어낸 딸에게 본능적으로 눈물을 바친 게 아닌가 싶다. ‘생식의 기계화’를 주장하는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언어가 내 초라한 눈물의 이유를 밝혀주었다. 그러니 점점이 흩어져 홀로 고행하던 여성들의 입술이 말할 때,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공유할 때, ‘고통의 언어화’로 자기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엄마들의 봉기는 인공자궁에 버금가는 혁명이 되지 않을까 나는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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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마을을 둘러싼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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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모두 읽고 났을 때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소설의 첫 장에 등장한 야나체크의 ‘신포니예타’와 2권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단편소설 「고양이 마을」이었다. 주인공 덴고의 여정을 함께 하며 고양이들이 인간처럼 살아가는 마을의 이야기를 읽자니, 이런 책이 실제로 한 권쯤 존재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 문제의 책을 찾아내진 못했으나 뒤적이는 과정에서 비슷한 느낌의 책을 발견할 수 있었던 고로, 혹시 나처럼 『1Q84』를 읽고 나서 「고양이 마을」에 호기심이 생겼을 사람들을 위해 몇 권 소개해 보기로 한다.

 

후지와라 신야의 책 『인생의 낮잠』에는 고양이 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에 소개된 에피소드를 무라카미 하루키 덕후스럽게 표현하자면, ‘고양이가 없는 오키카무로 섬을 벗어난 후지와라 신야와 친구가 순례를 떠난 해’에 ‘총알택시를 둘러싼 모험’에 휩쓸렸다가 ‘나사케 섬 재습격’을 통해 ‘쿨하고 와일드한 고양이떼’의 ‘후와후와’한 풍경을 목격했다는 내용 정도 되겠다. 이렇게 말하면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지니(지난 회차 칼럼은 소개한 소설의 내용을 흉내낸 것이었으나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조금은 덕후의 등급을 낮춰 다시 한 번 줄거리를 소개하기로 한다.

 

후지와라는 친구와 함께 몇 년 전 본 신문기사 하나를 단서로 삼아 무작정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야마구치 현에 있는 오키카무로 섬이다. 인구의 두 배 가까운 숫자의 고양이가 살고 있다는 사연에 호기심이 동해 어렵사리 섬을 찾았건만 이게 웬걸, 현지사정은 고양이섬이란 이름이 아까운 수준이다. 알고 보니 육 년 전 섬에 철교가 생긴 후 고양이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두 방문객은 허탈하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못 건지고 갈 수는 없다. 이 때, 두 방문객에게 또 다른 고양이 섬의 제보가 들어온다. 나사케 섬, 무려 갓 잡은 생선을 고양이들에게 던져주는 인심 좋은 곳이라는데. 그리하여 다시 먼 길을 떠난 두 방문객을 나사케 섬에서 맞이한 것은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는 고양이 떼의 풍경과 그 사이 낀 ‘어떤 생명체’였다. ‘어떤 생명체’의 정체는 책을 읽을 분들을 위해 비밀로 남겨두기로 하고, 다른 한 권을 마저 소개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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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제주도에서 며칠이고 함께 그림을 그리며 노닥거린 게 인연이 된 일러스트레이터 김지은 작가가 3월 초 궁디팡팡마켓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무작정 자원봉사를 빙자한 덕질에 나섰다. 김 작가가 고양이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나는 김작가가 자체 제작한 한정 배지 '쉼표 고양이'를 판매하는 둥 마는 둥하며 고양이 마을 같은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고양이 반지도 껴보고 고양이 드림캐처도 사보고 고양이 인증샷도 찍다가 책방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행사에 참가했다는 이야기에 부스를 찾아가 초면의 사장님께 책 추천을 강요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얻은 책 『또 고양이』를 ‘야옹충만’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에 펴 보니 아, 이것이야말로 「고양이 마을」 그 자체였다.

 

이 책의 작가는 왕위팅, 필명은 미스캣으로 대만 출신이다. 그런데 묘하게 책안엔 일본풍의 고양이가 득시글하다. 어째 그럴까, 사연을 파고들어 보니 우키요에 형식으로 책을 그린 까닭이란다. 탁월한 선택이다. 야옹찻집, 고양이 과일 가게, 벚꽃 도시락, 묘욕탕 등을 보자면 정말이지 일본 어딘가에 이런 마을 하나쯤 숨어 있을 것 같다. 더불어 고양이 마을 풍경 한 장, 그와 관련한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쓰다듬자니 묘한 상상을 하고 만다.

 

로또가 당첨될 확률로 내가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 무라카미 하루키와 만난다면 이 책들을 선물하고 싶다. “당신이 쓴 『1Q84』를 읽고 이 책들 찾아냈어요.”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 덕후겠거니” 하고 웃고 넘기려나. 아니면 함께 ‘신포니예타’라도 듣자고 청해주시려나. 후자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아아. 그 정도로 성공한 덕후가 되려면 갈 길이 구만리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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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운을 우리가 결정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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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이야기를 해 보자면, 두 시즌이 있다. 봄에는 책 제작비 1천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 우수콘텐츠 사업에 응모한다. 여름에는 책 한 권당 1천만 원어치를 팔 수 있는 세종도서 사업에 서류를 제출한다. 두 사업의 결과가 발표되는 6월말, 11월말이 되면 하루에도 몇 번씩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는데 기분은 내내 우울하다. 한번 생각해 봤다. 이 시즌이 되면 이토록 기분이 안 좋은 이유를. 그건 내가 로또를 사지 않는 이유와 비슷했다. 남의 손에 내 운을 맡기는 것이 내키지 않은 것이다.

 

타인의 운을 내가 결정하는 때도 있다. 투고 원고를 검토할 때다. 출판사에는 꾸준히 원고가 들어오는데 안타깝게도 출판사가 투고 원고를 출간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 원고를 굳이 다른 사람들이 읽을 이유가 있을까 싶을 때도 있고, 애초에 투고 원고를 진지하게 검토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그럼에도, 여러 차례 거절당한 원고가 세기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미담이 수백 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출판계를 떠돈다. 유명해진 저자의 이름만큼이나 그 원고의 가치를 최초로 알아본 편집자의 이름도 함께 회자된다.

 

분명 그런 미담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이번에 어떤책은 투고 원고를 출간했다. 분량이 200자 원고지로 1,400매 정도 되었는데, 파일을 열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빌 브라이슨, 더글러스 애덤스, 메리 로치,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글, 흔히 ‘영미논픽션’이라 불리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사로잡는 원고였다. 지적이며 재치 있고, 좌충우돌하는 캐릭터가 펄펄 살아 있는 실제 이야기.

 

낮에는 육체노동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여성 작가였다. 15년 편집자 경력에 식당에서 설거지하고 밭에서 토마토를 따는 작가와 일해 본 경험이 없었다. 나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사는 작가에게서 이토록 나를 매혹하는 글이 나온다는 게 신기했다.

 

출판계약을 맺기 위해 작가를 처음 만난 날 알게 된 두 가지는 작가가 서울예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는 것, 서른 개 넘는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는데 (거절의) 답장을 준 곳이 여섯 곳뿐, 나머지는 묵묵부답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기분이 어떨지는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무려 원고를 1,400매나 썼는데 말이다.

 

의외로 작가님은 담담했다. 그러니까, 이 작가님에게 원고 거절은 너무도 익숙한 일이었다. 매해 꾸준히 거절당했으니, 어떻게 보면 거절당하는 게 직업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다. 작가는 1년 내내 단편소설 세 편을 쓰고 다듬어 연말에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중간중간 공사 현장에서 막일을 하고, 드라마 촬영장에서 보조 출연을 하고, 밭에 나가 수확을 도왔지만, 밤에는 어김없이 골방에 틀어박혀 소설을 썼다. 그러고는 1월 1일이 되면 신문에 자신의 이름이 실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작가의 1년은 그렇게 지나갔다. 누가 직업을 물어보면, 뭐라고 답해야 했을까, 30년 동안.

 

나는 출판계의 저 미담들, 그 주인공들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책 한 권을 갖고 싶었던 '강은경'이라는 작가의 바람에 내가 아주 작게나마, 그러나 기꺼이 호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분 좋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투고를 하고 기획안을 내고 지원사업을 신청하고 보금자리주택에 서류를 낼 때, 우리는 정말 남의 손에 우리의 운을 맡겼던 걸까? 어쩌면 그럴 때조차 우리의 운을 우리가 결정했던 게 아닐까.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자리를 빌어 글 쓰는 일에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이 책이 그분들께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날은 서른두 번째 출판사에서 원고를 퇴짜맞은 날이었다. 나는 하늘을 향해 손가락으로 ‘퍽큐!’를 날리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다가 마치 날아가는 참새 똥구멍이라도 본 사람마냥 몸을 흔들며 웃어젖혔다. 푸하하핫! -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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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생각을 꺼내 들 때는 잘 닦아서 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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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음식일기』는 푸드 포토그래퍼의 일기입니다. 포토그래퍼 앞에 유독 ‘푸드’를 붙이는 이유는, ‘푸드’가 그의 유일한 피사체이기 때문입니다. 포토그래퍼들은 저마다 풍경, 인물과 같은 피사체를 통해 사건을 전하기도 하고, 어떤 감수성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푸드 포토그래퍼는 ‘푸드’에 이야기와 감정을 담아낸다고 합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미술책 편집자이기도 합니다. 이미지를 정말 좋아해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이미지보다는 이미지가 주인공인 책을 좋아합니다. 이미지 중에서는 ‘사진’을 가장 좋아하는데요, 10년 전에 린코 가와우치라는 일본 사진작가에 홀릭한 적이 있습니다. 홀릭 시기를 지나, 지금은 마음의 리스트에 넣어두고, 전시 소식과 사진집 출간 소식에 귀를 쫑긋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린코 가와우치 사진집『cui cui』

 

린코 가와우치의 사진집 중에서 『cui cui』(2007년)는 많이 알려진 편인데요. 개인적으로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사진집입니다. 작가가 카메라에 담은 건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그 안에는 삶과 죽음이 있습니다. 일견 매끈하고 아름답고 팬시해 보이지만, 그가 포착한 일상에는 어쩌면 '죽음'이 더 크게 자리하는 듯 보입니다.

 

이 책의 표지도 흥미롭습니다. 일본 요리 에세이처럼 표지는 음식재료 사진이고, 표지에 앉은 크기는 역시 일본 요리 에세이에서 자주 보이는 구도입니다. 린코 가와우치의 사진집의 표지는 대부분 이 구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린코가 ‘일상성’을 자신의 사진뿐만 아니라, 사진집에도 폭넓게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작가는 2006년에 린코 일기』라는 단행본을 두 권 낸 적이 있어요. 문고판 사이즈의 작은 책이었습니다. 1,2권에 각각 반년 분량이 들어가 있어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쓴 사진일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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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코 일기』

 

이 일기의 놀라운 점은 '포토그래퍼의 핸드폰 사진 일기'라는 것입니다. 2006년의 핸드폰은 지금과 같은 스마트폰이 아니었습니다. 사진의 해상도로 인해, 인쇄된 사진은 정말 엄지손톱보다 조금 큰 정도입니다. 내용은 정직하게, 일기입니다. 오늘 먹은 음식, 만난 사람, to do list 등... 그러나 매일의 기록이기에, 계절감과 포토그래퍼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었어요. 이 책을 꼭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또는 하고 있는 방법으로 사진이라는 예술 장르와 좋은 작가를 소개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습니다. 독자들이 예술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이즈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문고본이 아니면 출간하기가 어려웠어요. 지금에야 손에 착 안기는 작은 사이즈의 책들에 대한 저항감이 없지만, 2006년만 해도, 문고본 사이즈의 책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2015년 가을이었던 것 같아요. 도쿄에서 이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와타나베 유코, 『365일, 작은 레시피와 매일의 일』

 

일본의 요리 연구가 와타나베 유코가 사진으로 쓴 일기인데요. 보는 순간 린코 가와우치의 일기가 떠올랐습니다. 매일매일의 기록, 사진으로 쓴 일기, 365일이 모두 담기기 때문에 드러나는 계절감, 직업인의 일상... 모두 동일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디자인도린코 일기』떠올리게 했지요.

 

아, 한 예술가의 사진일기가 이렇게 진화할 수도 있겠다.

 

린코가 포토그래퍼로서 담은 계절감은, 주로 풍경이었어요. 그런데 요리 연구가가 사진일기를 쓰니, 거기엔 요리의 계절이 담기고, 사진 찍는 법 대신 레시피가 담기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의 새해 첫날 요리, 특별한 날 먹는 요리 등을 알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명절과 계절감이 담긴 책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아쉬움에 린코 일기』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이 책이 갖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콘셉트, ‘포토그래퍼의 일상 일기’라는 기획을 10년 만에 떠올렸습니다. 이 콘셉트까지 담은 책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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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해외 푸드 포토그래퍼들의 인스타그램을 즐겨 봅니다. 그들의 사진은, 사진이 맨처음 등장했을 때, 예술 내에서 자리를 획득하기 위해 명화의 구도를 따라했던 것처럼, 네덜란드 정물화나 19세기 인상주의자들이 묘사한 일상적인 풍경을 많이 차용하는 듯 보입니다. 어떤 포토그래퍼들은 아예 추상사진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자신들이 순전히 상업용으로 ‘푸드’를 찍는 게 아님을 알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2017년 포토그래퍼의 일기를 낸다면, 푸드 포토그래퍼의 사진일기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매일매일 우리가 하는 것, 삼시세끼 챙겨먹기. 이보다 더 일상적인 게 있을까요. 만 10년 동안 마음에 품어두었던 ‘포토그래퍼의 일기’를 다시 꺼내들었을 때는 ‘푸드 포토그래퍼의 1년치 일기’가 되었습니다.

 

#김연미, 『365일 음식일기』

 

이 책의 작가 김연미는 한국에서는 매우 드문 직업을 가졌습니다. 푸드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는 이가 아직은 많지 않습니다. 포토그래퍼는 사진에 자신만의 무언가를 담아야 합니다. 그래서 푸드 포토그래퍼로 불리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훌륭한 푸드 스타일링만으로도 훌륭한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스타일리스트와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결국 사진은 찍는 사람의 태도와 생각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작가 김연미는 요리 재료에 담긴 계절의 이야기와, 생산자의 이야기, 흙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입니다. 포토그래퍼들이 그렇듯, 발로 뜁니다. 재료의 산지를 찾아가서 직접 흙 냄새와 바람 냄새를 맡고, 생산자의 노고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 모든 것을 담기에, 그를 푸드 포토그래퍼라 부릅니다.

 

1년 동안 매일, 제철 재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과일이나 채소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도 소환해냅니다. 어떤 상차림에는 신혼부부의 행복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이 책에는 한국의 제철재료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제철이 언제인지도 알 수 있지만, 언제가 가장 늦은 때인지도 나와 있습니다. 저자가 한 재료의 계절이 가는 걸 아쉬워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담긴 흙 냄새와 바람 냄새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사진에 담긴 것은 테이블에 잘 세팅된 재료들이지만, 만약 그것들이 반짝여 보인다면, 포토그래퍼가 사진에 제철재료의 정확한 때를 손꼽아 기다리던 설렘을 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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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가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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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탕수육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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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돈이 음슴으로 음슴체로 쓰겠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려다가 말았다. 돈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나름, 편집자니까, 가까스로 참았다. 가끔 내 인스타그램을 보곤 편집자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제법 다정하게 말해준다. “님하, 제발, 그러지 마세요.” 뭐, 이렇게는 아니지만 대충 비슷하게 말한다. 하지만, 뭐, 하고 싶으면 별수 없다. 그들의 꿈은 단단하고, 진짜 마음 같은 게 느껴지는 분들도 (가끔은) 있다. 그럴 때마다 뭐랄까, 틈이라도 있으면 (살고 싶어지는 게 아니라) 숨고 싶어진다. 아, 부끄럽다, 부끄러워, 하고 중얼중얼 투덜거리게 된다. 틈만 나면 살고 싶다』를 편집하는 내내 정말이지 부끄러워서 혼났다. 내가 편집자로 계속해서 살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돈 때문에도 그랬고, 능력이 모자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책이 나와서 보니 실수는 왜 이리 많은지, 참, 에잇.

 

틈만 나면 살고 싶다』를 내 식대로 설명하자면 서른일곱 명의 ‘인생썰’이 기록된 책이다. ‘인간극장’인 것도 맞지만 ‘인간썰전’에 가깝지 않나 싶다. 책 표지가 황사빛인 것만 봐도 밝은 이야기가 아니란 것쯤은 눈치챌 수 있을 테지만 그래도 표지에 흰색도 있고 주황색도 있으니 뭐 꼭 어두운 것만은 아니고, 그냥 보통의 우리가 사는 이야기다. 매주 로또를 사고, 김밥천국에서 점심을 때우고, 졸업 후에 1, 2년은 누구나 백수라는 이름을 ‘취준생’이란 팻말로 덮은 채 살지 않나. 나만 해도 그랬다. 알바나 학교나 직장에 한 번 다녀오기만 해도 하루가 다 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만 해도 그렇다.

 

요 며칠 대통령 후보 토론회를 다시보기로 보면서 최저임금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괜히 찔려 움찔거렸다. 뭐, 최저임금에 대해 엄청난 문제의식을 느껴서 그런 건 아니고, (죄송합니다!)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되면 알바생들의 월급이 내 월급보다 많아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죄송합니다!) 아니,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되면 내 월급도 자연스레 많아지려나, 하는 기대가 들어서였다. 아, 부끄럽다, 부끄러워, 이런 생각이나 하고.

 

틈만 나면 살고 싶다』속엔 여러 통계가 나온다. 이리카페에서 김바바 실장님을(미용실 실장님 아닙니다! 편집자들은 디자이너들을 보통 실장님이라고 부른다)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도비라에 통계를 넣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넣고 보니 제법 괜찮았다. 아무튼, 그래서, 그날부터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통계청이란 데 들어가서 이런 저런 통계들을 뒤적거렸다. 자살률, 청년 실업률, 분거가족 비율, 평균 부채……. 하, 정말, 보고 있는 내가 다 민망했다. 숫자에 미안해 본 건 처음이었다. 그때 다섯 살 아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갔고, 하, 정말, (내가 국회의원도 아닌데) 아들 보기가 부끄러워졌다.

 

틈만 나면 살고 싶다』가 입고된 날엔 호사를 부렸다. 동네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 小를 하나 시키고, 짬뽕을 하나 시키고, 공깃밥을 하나 추가해달라고 사장님께 공손히 주문했다. 그렇게 아내와 나, 다섯 살 아들이 가게 식탁에 둘러앉았다. 오랜만에 하는 외식에 우리의 볼은 발그레해졌다. 탕수육 먹고 싶을 때 돈 걱정 안 하고 탕수육을 먹고 싶다고 친구들에게 말했던 적이 있다. 김나리란 친구는 그걸 늘 기억해줬고, 최성웅이란 친구는 번역비를 받아선 내게 크림 탕수육을 사줬다. 그들 말고도 살면서 참 많이도 얻어먹었다. 밥이기도 했고, 인기척일 때도 있었고, 세상의 어느 한 틈이기도 했다. (아아, 쉽진 않겠지만) 나도 앞으로는 틈만 나면 밥을 사겠다. (이렇게 끝나면 뭔가 어색하지만) 끝! 아! 김경주 작가님, 신준익 작가님, 김바바 실장님 모두 작업 내내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또 같이 해요.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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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차 캔을 따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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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자화상>. 17세기 이탈리아의 바로크 시기 화가로 여성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아 회원이 된다. 아버지의 친구에게 강간을 당했으나 당시로는 드물게 고소를 했다.

 

1996년 12월 말,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나는 강릉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겨울방학을 맞아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내 옆 창가 자리에는 하얀 제복을 입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2시간 정도 지나 영동고속도로의 휴게소에 버스가 정차했다. 화장실에 다녀와 다시 내 자리에 앉아 있는데 옆자리 사관생도가 양손에 음료수를 들고 돌아와 내게 하나를 건넸다. “이거.... 좀 드세요. 몸에 좋은 대추차에요.”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가끔 이렇게 음료수를 건네며 말을 붙이는 남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거절도 못하고 우물거리며 음료수를 받아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그냥 들고 있었다. 잠시 후 사관생도는 다시 내게 조심스레 권했다. "드세요. 대추차가 몸에 좋대요”


대추차, 지금은 온장고 음료가 환경호르몬이 의심된다고 하니 건강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분위기 깨는’ 음료가 된다. 그러나 당시는 94년에 식혜가 캔 음료로 출시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후 각종 전통 음료가 많이 생산되던 시기였다. 게다가 음료수도 호빵처럼 따뜻하게 데워서 판매할 수 있는 온장고가 보편화되면서 겨울 음료의 다양성이 증폭되었다. 캔에 들어있는 따뜻한 대추차란 나름 신제품이었다.


재차 사관생도의 권유를 받고 나는 들고 있던 대추차를 따서 한 모금 마셨다. 딸깍, 캔을 따는 순간은 마치 내가 잠긴 현관문을 열고 나와 그를 환영한다는 신호처럼 작동했다. 내가 마신 한 모금의 음료수가 목을 넘어갈 때 그는 얌전하게 내게 말을 붙였다. 학생이세요? 전공은요? 와, 그림 잘 그리시나 봐요. 집이 강릉이에요? 그는 청주에서 공군사관학교를 다니는 4학년 학생이며, 집이 삼척이라 강릉에서 다시 삼척행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고 했으며, 나와의 접점을 찾기 위해 사관생도들도 교양으로 예술 관련 과목을 조금씩 배운다는 말도 열심히 했다. 이렇게 기본적인 자기소개를 거치고 나서 대관령 정상 즈음 다다랐을 때 버스가 예고 없이 멈췄다.


당시 영동고속도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2001년 확장되기 전에는 지금처럼 수많은 터널이 아니라 대관령 고개를 굽이굽이 넘어야 했다. 말 그대로 아흔아홉 고개를 넘는다. 경사진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를 거대한 구렁이를 타고 가듯 구불구불 넘어간다. 겨울에 폭설이 내리면 대관령 정상에서 차량이 고립되는 일이 늘 있었다.


버스 기사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아까부터 내리던 눈발이 더 강해졌고, 앞서가던 차들이 줄줄이 멈춰서 정체 상태이며, 대관령 정상부터는 차량 점검을 거친 후 체인을 감아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잠시 정차한다고 했다. 뉴스에서 보던 ‘대관령에 차량 고립’이 나의 현실이 되었다. 몇 시간이고 갇혀있을 수 있다. 정상적인 상황이면 15분이면 내려간다.


사관생도가 준 따뜻한 대추차가 다행히 손을 덥혀주었다. 그가 창밖의 눈을 한참 보더니 내게 물었다. “영화 <가위손>보셨어요?” 아니요. “저는 이렇게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가위손>이 생각나요. 위노나 라이더랑 조니 뎁이 함께 눈을 맞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아름답거든요.” 폭설이 내리는 대관령 정상에 고립된 버스 안, 처음 만난 여자와 남자가 영화 <가위손>이야기를 하며 창밖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 그 남자는 하얀 제복을 입고 앉아서 조용히 말한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낭만적이다.


음료수 캔을 탁 따는 순간으로 다시 휘리릭 필름을 감아 되돌아가자. 내 머릿속은, 분열적으로 이리저리 생각을 옮겨 다니기 바빴다. 사실 나는 사관생도가 음료수를 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 영어 선생님이 들려준 일화가 떠올랐다. 버스 안에서 옆자리 남자가 주는 요구르트를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버스 종점이었고, 지갑과 소지품이 모두 털린 뒤였다고 한다. 나는 대추차 캔을 따면서 ‘안 딴 캔이잖아. 뭘 넣기는 어렵겠지? 어디 뭐 구멍이라도 있나. 따뜻하잖아. 방금 휴게소에서 산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눈알을 바쁘게 굴렸고, 음료수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혹시라도 내가 정신이 괜찮은지 확인하며 그의 말에 대꾸했다. 그가 말한 ‘몸에 좋은 대추차’가 나를 잠들게 하는 약물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버스가 멈췄을 때 차라리 다행스러웠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이 대관령 꼭대기에서 함께 고립되었으므로. 나는 혼자가 아니다.


다행히, 대추차는 그저 대추차였다. 그는 예의 바르고 깔끔했다. 영화 <그날의 분위기>처럼 “오늘 웬만하면 그쪽이랑 자려고요” 따위의 흉한 수작도 없었다. 수많은 의심과 실제의 위기 속에서 나는 지금까지 어찌어찌 잘 살아남았다. ‘잠재적 가해자’로 본다며 남자들은 억울해하지만 실은 온 사회가 여자들의 일생에 걸쳐 남자들이 잠재적 가해자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대부분 이미 공범이다. 여자에게 향하는 ‘조심해’라는 말이 이를 잘 알려준다. 곧, 공포를 통해 한 성이 다른 한 성을 지배한다. 반면 남성들은 남의 몸을 침범한 경험을 공유하며 남성연대를 맺는다. 이게 바로 강간문화다. 우리는 강간문화의 산증인 홍준표라는 사람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보고 있다. 성폭력은 이렇게 사회적으로 희석된다.


반면 여자의 ‘조심하지 않은 죄’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각종 폭력보다 더 가혹하게 처벌받는다.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의 경험을 말하고 쓰는 일은 상대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보자. 누군가의 공포를 자양분 삼아 만들어진 로맨스가 넘쳐난다. 돼지흥분제를 여자에게 몰래 먹여 정신을 잃으면 ‘내 여자’로 만들겠다는 성범죄에 동참한 경험을 책에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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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1612년. 작품이 만들어진 1612년은 바로 젠틸레스키가 강간을 당한 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복수’를 이어갔다.

 

영화 <엘르>에서 미셸(이자벨 위페르)은 섹스파트너와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지만 상대 남자는 집요하게 요구한다. 미셸은 그와 마지막으로 성관계를 맺을 때 시체처럼 가만히 있는다. 나는 뒤이어 나오는 남자의 대사를 듣고 놀랐다. “오늘 정말 좋았어. 어떻게 시체놀이를 생각했어?”


여자와 관계 맺을 줄 모르기 때문에 여자가 자발적으로 가만히 있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가만히’ 있는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각종 약물을 개발한다. 데이트 강간 약물date rape drug은 미국에서도 캠퍼스 강간의 주요한 한 축이다. 45년 전 홍준표 후보와 하숙집 친구들의 행태는 정확히 이 경우에 해당한다.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Acquaintance Rape,『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책 제목에 다 담겨있다. 대마초도 합법화되지 않은 나라에서 생명에 지장을 줄 수도 있는 약물을 여자에게 먹이는 ‘놀이’에는 어쩜 이리도 무감각할까.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의 주된 원인은, 가해자의 행동을 사회적으로 용인될만한 것으로 만드는 폭력에 대한 무지함이다”(273쪽). 자신을 한 일을 모르는 사람, ‘홍준표’가 용인되는 사회가 몸서리 처진다.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4차산업혁명의 시대가 온다고 호도한다. 그 어떤 산업혁명이 와도 여성은 여전히 강간당한다. 여성에게 먹이는 강간 약물은 돼지흥분제에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발전했고 창호지를 뚫어 훔쳐보던 침범의 눈들은 최첨단 몰카로 바뀌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일상의 폭력이 정치적 사안이 되지 못한다면, 여성은 시민권이 없다는 뜻이다. 의식 없는 여성에 대한 신체 접촉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게 키스하는 동화 속의 왕자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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