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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온도, 만화의 소리를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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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될까? ……싶었다. 막연하게 ‘합체! 크로스!’ 같은 분위기로 시인과 만화가를 의기투합시키면 될 것도 같았다. 그러니까, 그러다가도 더더욱 ‘아, 이건 안 될 것 같다’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자칫 오락가락하는 예감에 휩쓸려 의욕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윤후 시인과의 만남은 나를 호기롭게 만들었다. 이 좋은 글노래꾼은 아직 뭐가 될지 모를 그것을 조심스럽게 ‘같이’ 상상해주었다. 태초에, 그의 첫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을 키로 삼아 시작된 상상이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펼쳐졌을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한 소년이 우주 공간에서 유영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이윽고 소년은 헬멧을 벗고 진공에서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상쾌한 듯. 진동을 전달하는 매질이 없어 전혀 들릴 리 없는 음악과 말소리도 들린다. 이제 소년은 우주복을 모두 벗는다. 러닝셔츠와 트렁크 팬티 차림이다. 소년은 자기 얼굴이 흐릿하게 비치는 황금빛 헬멧 유리에 무언가 글을 적는다. 어쩌면 시를. 다 적은 소년은 헬멧을 쓰고서 다시 우주복을 입으려 하지만 어느새 자란 탓에, 통으로 된 우주복에는 한쪽 다리만 겨우 들어갈 뿐이다. 어쩌지? 어쩌면 좋지? 상쾌한 진공도 헬멧 선바이저의 부끄러운 낙서도 조잡한 무중력도 모두 사라지기 전에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진짜 막연했다.

 

이즈음 나타난 구원의 사람이 바로 노키드 만화가였다. 이 좋은 그림이야기꾼은 저 괴이쩍고 의뭉스러운 편집자의 상상에 별가루를 뿌려줄 수 있는 우주의 절대 ‘무언가’였다. 평소 시를 읽은 적이 없다고 했지만, 그는 편집자의 머릿속을 넘어 시인의 머릿속까지 들어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공감/표현 능력을 발휘했다. 그가 그린 소년은 그냥 남자아이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시어 ‘소년’이 변한 모습이어서 무척 좋았다. 누구라도 그것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시인은 만화가의 그림을 좋아했고, 만화가는 시인의 글을 좋아했다. 얼마 전에 진행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인은 『구체적 소년』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 만화가의 것이라 여긴다고 말했고, 만화가는 『구체적 소년』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 시인의 것이라 여긴다고 말했다. 작업하면서 사실 긴 시간 같이 보낸 적이 없는 두 사람인데 왜 이렇게 사이가 좋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곧 책에 실린 시인의 코멘터리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기 구상으로는 이 책에 만화만 실릴 예정이었다. 그렇다고 만화가에게 모든 짐을 떠안겨버릴 수는 없기에 (대한민국 사상 초유의 작업을 맡게 된) 만화가에게 시인은 상냥한 편지를 보내고 말았다. 그 글은 내가 볼 때 ‘좋아요’와 ‘하트’를 수조 개는 받을 만큼 좋았다. 덜컥, 책에 싣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어쩌면 사적인 영역이 담긴 섬세한 글이기도 해서 서윤후 시인이 책에 싣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 혼자 끙끙거렸다. 다행히 노키드 만화가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작업이 거의 끝날 무렵, 표지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시인에게 책에 코멘터리를 넣자고 말했다.

 

결과는? 그렇다. 바로 훨씬 더 좋은 『구체적 소년』이다. 그리고 이로써, 앞으로 이어질 만화시편 시리즈의 기본 구성이 완성되었다. 편집자로서 두 저자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서윤후 시인의 시구를 변용한 이 말을 또 남기고 글을 마칠까 한다.


“만화시편은 내일도 독자를 구직하겠습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찢긴 결론의 결들을 따라 이리저리 이지러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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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에서 안미린 시인의 시를 처음 보았을 때를 기억한다. 정말 이상한 시라고 생각했다. 문장과 문장 사이가 멀고도 가까운, 시어와 시어가 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그런 시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통과한 길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뒤돌아보게 되는, 그런 멀고도 이상한 나라로 이어지는 시. 내게 있어 이상한 시란 더없이 좋은 시란 말인데, 안미린 시인의 시가 그랬다.

 

복제되고 다음 날 같다
가가 다에게 고백을 했다
전생에 나는 너를 잡아먹은 적이 있어
나는 외계인이 아니었어?
아니었어
아니었어?
어른이었어,
여자애라면 머리를 돌돌 말아 고정시켰지

 

(중략)

 

여름의 정글짐
겨울의 정글짐
물을 먹지 않고 마시는 감각과
씨앗 근처의 눈부신 맛
팔을 벌려 납작해지며 벽을 안아 봤던 날
나도 몰래 홀수로 얼음이 얼고
무수해졌어
자기 이외의 생명?
자기 이외의 생명,
메롱하는 것
- 「라의 경우」 부분

 

복제된 다음 날이란 무슨 날일까. 어제의 나와 전혀 다름없는데도, 무엇인가 본질적인 부분이 다르다는 것, ‘나’이면서 ‘나’와 어딘가 일치하지 못하는 것. 바로 거기서 안미린 시인의 시는 시작된다. ‘나’에 대해 말하면서 ‘가’와 ‘다’가 등장하는 이 세계에서, ‘나’란 1인칭인지 3인칭인지조차 헷갈리게 된다. ‘아니었어’와 ‘아니었어?’의 반복, 그리고 그 반복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차이 사이에서 안미린 시인의 시는 흔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름의 정글짐’과 ‘겨울의 정글짐’처럼 같으면서 다른 것에 대하여, 같으면서도 다른 그 많은 ‘자기 이외의 생명’에 대하여 물음표를 붙이고 반문하며 “메롱”하고 혀를 내미는 귀엽고도 능청스러운 태도 같은 것이 시의 문장과 문장 사이를 더욱 벌린다. 그러므로 안미린 시인의 시는 하나의 시 안에서 하나의 시어가 같은 의미로 존재하지 않는다.

 

가에서 나와 다를 경유하는 듯 보이면서도 사실은 그로부터 어긋남으로써 ‘라’에 도달하는 시, 그렇게 함으로써 ‘나’로부터 살짝 비틀어진 ‘라’(신의 이름)에 도달하는 이상한 경우의 세계. 이 기민하고도 자유로운 미끄러짐이 안미린 시인의 시가 만들어내는 경이의 지점이다.

 

미래의 약도가 은박지라면
박쥐로 접어놓은 은박지라면
신의 그림자는 은박지의 뒷면이겠지

 

아랫집 아이가 아래로 이사를 하면
거울 접시를 천장처럼 믿고 싶어져
아랫집 아이보다 아래로 이사를 하고
낮은 미로를 깊이처럼 풀어 두었어

 

네가 방에 없을 때 내 방의 불을 켤까
지도 위로 비스듬한 자세들을 불러 모을까
지도를 구길 때마다 지름이 생길 테니까
입술을 깨물 때마다 층계가 생길 테니까

 

(중략)

 

세계가 미지의 차원처럼 구겨졌을 때
미래에서 멀어지는 약도를 완성한다면
어서 와!
앞으로 우리가 만날 장소가 바로 흉터야
- 「초대장 박쥐」

 

시인의 치밀하고도 발랄한 은유의 구조가 빛나는 시다. 은박지->박쥐로 연결되는 말놀이와 어린 시절 은박지로 만들곤 하던 이런저런 종이 접기들이 겹쳐져 시인은 숨겨진 세계로 통하는 지도이자 초대장인 흉터를 발명해낸다. 무엇인가를 감싸는 물건, 즉 표면이면서 결국 버려지는 것인 은박지의 뒷면으로부터 숨겨진 세계를 발견하는 시인의 눈은, 점차 확장되어 이 세계 전체의 이면을 발견해낸다.

 

표면과 뒷면에 대해 말하던 시는 바로 이어져 위와 아래에 대해 말한다. 아랫집 사는 아이가 아래로 이사를 하여 아래가 깊어지면, 빛나는 접시에 비친 천장을 천장이라 믿게 되는 묘한 역전을 믿게 되고, 그로부터 낮은 미로가 출발한다는 발상, 그렇게 함으로써 위와 아래가 바뀌는 세계가 그려지는 것이다. 이처럼 안과 밖이, 정과 부정이 뒤얽히며 만들어지는 ‘구김’과 ‘깨물림’이 숨겨진 세계로 통하는 ‘층계’를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그 구김과 깨문 자국이 만들어내는 흉터가 숨겨진 세계의 지도가 되고, ‘우리’의 관계가 시작되는 새로운 지평이 된다.

 

감각과 인식이 자연스럽고도 절묘하게 연결되며 확장되는 이 결론 없는, 결론이 찢어진 세계는 그 찢어진 결들을 따라 이리저리 이지러지며, 전에 없던 세계를 향해 너무나도 가볍게, 너무나도 멀리 날아가는 것이다. 내게는 이 놀랍고도 기민한 전복과 뛰어넘기의 세계가 놀랍고 아름답다. 천부적인 감각을 따라 움직이는 듯한 이 시인의 세계가 내게는 그저 부러울 따름인 것이다. 그저 내 깜냥이 부족한 탓에, 시인의 자유로운 감각의 논리를 관념에 치우친 말들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빛이 아닌 결론을 찢는안미린 저 | 민음사
2012년 계간지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안미린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빛이 아닌 결론을 찢는』이 민음의 시로 출간되었다. 안미린 시인은 “비스듬한 차이들과 유사성에 대해 사유하는“ 시, ”부드럽게 거칠고 거칠게 부드러운“ 시, ”과감하게 생략하고 비약하고 가로지르는 자유로운 어법 그 자체“라는 호평을 받으며 「라의 경우」 외 9편의 시로 등단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참혹한 뒤엉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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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모두 읽고 보고 듣지는 않았지만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이 나왔다고 알고 있다. 곳곳에서, 자기 자리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세월호 작품을 일일이 찾아 접할 마음의 여유는 없다. 슬픔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일처럼 힘들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4.16연대 미디어위원회가 만든 다큐멘터리와 김탁환 작가의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를 함께 이야기하는 곳을 찾아갔다.


세월호 참사 전체를 느낄 수는 없었음에도 찍을 수밖에 없었던 사진들이 몇 장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런 저런 곳에 쓰였다. 살아 돌아오지 못한 단원고 학생들이 쓰던 방을 찍는 프로젝트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수십 명 사진 찍는 이들이 힘을 보탰다. 기록을 위한 일이었지만 참사 1주기에 광화문 광장에서 ‘빈 방’이란 이름으로 전시를 했다. 이 일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김탁환 작가의 책에 「찾고 있어요」라는 제목의 소설로 들어가 있다고 했다.


잠수사, 생존자, 남은 사람을 다룬 세 편의 영화를 본 뒤 가진 대화의 자리에서 「찾고 있어요」만 따로 이야기되지는 않았다. 굳이 질문을 하지도 않았다. 세월호 글을 쓰면서 느낀 슬픔과 고통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충분했다. 사진을 찍으며 느꼈던 감정과 비교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충분했다. 그런 감정은 길게 말하면 모호해지기 마련인데 ‘참혹한 뒤엉킴’이었다고 정리하는 작가의 말은 그래서 다가온다. 뭍에 올라온 세월호의 모습도 지난 3년의 과정도 참혹한 뒤엉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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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독한 사랑쟁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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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독한 사랑>을 처음 본 게 언제였는지는 이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그 무렵 밤마다 비디오데크에 철커덕 테이프를 밀어넣고 영화를 보았다. 곁에 누가 있었던가.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볼륨을 잔뜩 낮추었어도 대사를 다 따라 할 수도 있을 만큼 영화를 자주 보았던 터라 아무 상관없었다. 몇 년이 지나 나는 폐업 정리 중인 비디오 가게에서 <지독한 사랑>테이프를 샀다. 그 후 비디오플레이어가 고장 나고, 더는 비디오플레이어 따위 팔지 않는 시절이 오고서야 나는 테이프를 버렸다. 아마 십 년도 더 지난 일이겠지만 다시 <지독한 사랑>을 본다 해도 절반쯤은 대사를 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고 말고.

 

내 주변에는 <지독한 사랑>의 주인공들처럼 참 지독한 사랑쟁이들이 많고도 많았다. 그들은 사랑에 잘도 빠졌고 한 번 사랑을 시작하면 온 넋을 사랑에만 갖다 바쳤다.

 

L은 한 남자와 네 번이나 청첩장을 찍었다. 파혼을 한 번씩 할 때마다 그들은 서로를 죽일 듯이 비난하고 원망했지만 다시 사랑에 빠질 때엔 처음보다 더 깊고 깊었다. 이십대 초반에 연애를 시작했던 그들은 마흔 살이 넘어서야 네 번째 청첩장을 제대로 돌렸고 결혼을 했다.

 

S도 한 남자를 죽도록 사랑했다. 그녀가 한쪽 귀에만 구멍을 다섯 개나 뚫어 귀고리를 줄줄이 달고 나타났을 때 남자는 은색 귀고리 하나하나 입을 맞추며 그녀의 용기를 치하했다. 물론 남자의 몸무게가 90킬로그램을 돌파했을 때 S도 그의 두툼한 배에 뺨을 대며 (그것도 무려 사람들로 붐비는 낙지볶음집에서!) 폭신하기 짝이 없는 베개 같다며 좋아했으니 누가 더 깊은 사랑쟁이인가는 도저히 평가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결혼 3주 만에 잠깐 위기를 겪기도 했다. S는 꽤나 심각한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제 좀 지네 집에 가줬음 좋겠어. 왜 자꾸 우리 집에 오는 거지?” 결혼을 하면서 남자는 S가 살던 집으로 들어왔다. 오래 혼자 살아온 S는 아무리 사랑한들 3주 이상 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뭉개는 그가 버거워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 전 결혼 10주년 파티를 했다. 여전한 사랑쟁이들이다.

 

Y는 날씬하고 예뻤다. 하지만 술만 마시면 라면을 네 개씩 끓여먹는 버릇이 있었다. Y를 사랑했던 남자는 Y가 민망해 할까봐 라면을 똑같이 먹는 습관을 들였다. 물론 네 개까지는 먹지 못했고 가장 많이 먹은 날이 세 개였다. 사랑쟁이들의 엔딩이 결혼일 리는 없다. 결혼까지 가 닿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의 사랑을 폄하할 순 없다. 그건 몹시 촌스러운 생각이다. Y와 남자는 헤어졌지만 간간이 마주칠 때면 서로의 어깨를 꼭 만져주곤 한다.

 

H는 호주 멜버른을 여행하다 맨발로 도시를 걷던 남자를 만났다. H는 서울에서 일하던 디자이너였고 남자는 반경 3킬로미터 이내에 아무도 살지 않는, 그야말로 호주 깡촌의 농장에서 홀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개는 두 마리 있다고 들었다. 사실 나는 H가 서울로 돌아오면 금방 남자를 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두 사람이 얼마나 지독한 사랑쟁이인지 파악하지 못한 나의 오해였다. H는 회사를 그만두었고 호주의 깡촌으로 떠나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소고기와 맥주와 소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H는 베지테리언 남자와 함께 여태 그곳에서 살고 있다. 소고기 대신 당근튀김과 아보카도를 깨물어 먹으면서 말이다.

 

주말에 소파에 누워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카르멘』을 읽었다. 머리에 아카시아 꽃을 꽂고 그것도 모자라 입술 끝에 아카시아 꽃을 문 여자 카르멘의 이야기. 입에 물었던 아카시아 꽃을 멀쩡한 청년 돈 호세의 가슴팍에 던지자마자 그는 아무도 못 말릴 사랑쟁이로 돌변을 한다. 내가 아는 L과 Y, H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그는 정신없이 카르멘에게 빠져들어 그만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빨간 드레스에 구멍이 숭숭 난 실크양말을 신은 카르멘 역시 더할 나위 없는 사랑쟁이지만 그녀는 돈 호세와는 살짝 달랐다. 돈 호세도 사랑하고 가르시아도 사랑하고 루카스도 사랑했지만 그녀가 가장 사랑한 건 역시나 보헤미안 여인답게 ‘자유’였기 때문이었다. 『카르멘』의 첫 장에는 그리스 시인 팔라다스의 시구가 인용되어 있다. ‘모든 여자는 쓸개즙처럼 쓰다. 하지만 달콤한 순간이 둘 있으니 하나는 침대에 있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죽었을 때이다.’ 연애소설의 시작치고는 생뚱맞다 싶지만 책을 덮고 난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유를 사랑한 여자와 그런 여자를 사랑한 남자였으니 결말은 파탄일 수밖에.

 

그동안 사랑 따위 좀 맹숭맹숭했던 나는 이 사랑쟁이들에 대한 기억으로 꽤나 벅찬 며칠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책장을 다시 훑는다. 더 진한 연애소설 어디 없을까. 에너지 충만하게 채워줄 그런 사랑쟁이들의 이야기 어디 또 없을까.


 

 

카르멘프로스페르 메르메 저/변광배 역 | 부북스(BooBooks)
소설보다는 비제의 오페라로 더 잘 알려진 『카르멘』. 음악 분야는 물론이고 수많은 예술 분야, 가령 영화, 발레, 연극, 인형극, 만화, 샹송, 그림 등과 같은 분야에서 그 내용이 변용되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재창조되면서 유럽을 대표하는 하나의 ‘신화’로 자리 잡은 작품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내일 일은 난 몰라도 뚜벅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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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문장(안 이후 로소 보이는문장)

 

당신이 음악 외길을 걸어간 것은 절대로 쓸모 없는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노래에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당신이 만들어낸 음악은 틀림없이 오래오래 남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곤란하지만, 아무튼 틀림없는 얘기에요. 마지막까지 꼭 그걸 믿어주세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어야 합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142-143쪽


1. 


퇴근을 하려는데 메일 한 통이 왔다.


보낸 이는 40대 초반으로 치과를 운영하며 두 아이의 아빠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육아에 관심이 많아 육아서도 두루두루 섭렵했고 어쩌다가 최근 당신의 칼럼도 읽게 됐다. 일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쌓이면 가족들이 다 잠든 후 혼자 술을 한잔씩 했는데, 어제 밤에는 군대에 또 가는 악몽을 꾸고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당신의 책을 다 읽고 너무 공감이 돼서 메일을 보냈다.


황송하고 감사했지만 내 책에 대한 과분한 찬사보다 메일의 마지막을 읽고 소름이 오도독 돋아버렸다. 


“사족으로 저랑 와이프의 신혼여행은 노매드를 통해 발리로 갔었습니다. 벌써 9년전에 시청 쪽 사무실에 가서 계약했는데, 시간이 빠르네요. 작가님의 이력을 보고 저랑 와이프도 깜짝 놀랬지요.“

 

9년 전에 내 회사에 찾아와 여행을 예약한 고객이 9년 후에는 내 칼럼과 책의 독자가 되어 나에게 메일을 보낸다. 세상은 참 좁고 죄 짓고 살면 안 된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예측불허의 만남과 그 만남으로 파생되는 또 다른 역사들의 집합체가 결국 인생이 아닐까 라고 생각을 하니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2.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서로 어떻게 얽혀있는지 모르는 체 얽히고 설켜있다. 그리고 역시 자신들도 모르는 체 영향을 주고 받는다. 도움을 준 사람은 모르고 있는데, 도움을 받은 사람은 대박을 치고, 도움을 준 사람은 도둑이 되어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도움 받은 사람의 집을 터는 식이다.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폐가 안에서 세 명의 도둑은 현재를 살고, 그들에게 상담 편지를 쓰는 고민남녀들은 과거를 산다. 1980년에 사는 사람의 고민을 2002년의 사람이 상담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미야 잡화점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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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은 이미 다 지나 온 시간이니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암에 걸린 애인을 두고 올림픽 대표가 되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여자에게, 어차피 모스크바 올림픽은 일본이 보이콧을 할 것이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믿지 않을 테고 미친 사람 취급을 할 테니까. 돌려 말하지만 확신에 찬 상담의 힘은 막강하다.


고민자들의 인생이 바뀐다. 호스티스가 되려는 가난한 처자에게는 돈 버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부동산 열풍 불 테니 땅 사라, 언제부터는 거품 빠질 테니 모든 투자에서 손을 떼라, IT 산업이 뜰 테니 인터넷 사업을 하라. 여자는 부자된다. 읽으면서도 신난다. 나에게도 미래에서 누군가 이런 팁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군침 흘린다.

 

감동도 있다. 가업인 생선가게를 할 것이냐, 무명가수로 살 것이냐의 고민 편지를 손에 든 도둑들은 알고 있다. 고민자가 보육원 화재 현장에서 아이를 구하려다 죽게 된다는 것을. 아이의 누나가 유명한 가수가 되어 이 청년의 곡을 유명하게 만든다는 것을. 그러나 그것을 말하면 이제는 아이가 죽게 되니, 안타깝게도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당신이 만든 음악은 오래 간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것을 믿어라”.

 

3.


나이가 들수록 자신감은 떨어지고 불안감은 커진다. 일과 관련해, 내가 뿌리고 있는 씨앗들이 풍년의 수확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낙관보다는 어쩌면 그냥 다 땅 속에서 죽어버리거나 엄한 새들의 먹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비관이 더 크다. 허공에서 헛발질과 헛수고를 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나미야 잡화점처럼 누군가 미래에서 나타나 내 귀에 속삭여주면 좋겠다. “ 지금 하는 일은 잘 될거니 아무 걱정 말고 저 일은 그만해. 그리고 참고로 800회차 로또 번호는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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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리가 없다. 나미야와 현실의 공통점이라면, 모든 존재가 연결돼있고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는 다는 점이다. 내가 오늘 뿌린 씨앗이 어떤 결실로 나에게 올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씨앗을 뿌리는 과정에서 내가 품는 마음과 하는 언행과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후 어떤 모양으로, 나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어마하게 중요하다. 엔지니어에게 한 시간 명상 지도를 했는데, 그가 어느 날 스님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그런 생각하면 인생이 설렌다. 비행기에 내렸을 때,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를 짐작하지 못하는 여행자처럼, 인생의 여행자들은 앞으로 나의 삶이 어떤 풍경으로 펼쳐 질지를 알지 못한다. 어쩌면 나미야 잡화점의 도둑들이 미래를 말해준다고 해도 흔쾌히 오케이를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설령 불안하고 불확실한 인생이라도 설렘을 뺏기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이것 저것 생각하지 말고 그저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자고 마음먹는다. 그렇게 가다 보면 9년 전 고객으로 만난 사람을 9년 후 독자로 만나는 것처럼, 매복해있던 신기한 일들이 뿅뿅 나타날 것이다. 삶의 의외성과 반전을 만난다는 것, 살아있는 자의 특권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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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볼 수 있는 특권 말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불안하지만 결국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게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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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한 저녁, 블로그를 타고 넘어가며 이런 저런 글을 보고는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서늘한여름밤’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다. 그림체는 정식 미술 교육이나 만화 훈련을 받은 작가는 아닌 것이 분명했는데, 내용이 묘하게 공감이 갔다.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 인간관계, 마음의 갈등에 대해서 1등신인 주인공이 투덜거린다. 예를 들어

 

“어른들은 조개는 상처를 통해 영롱한 진주를 만든다고 하지만, 영롱한 진주로 즐거움을 얻는 것은 조개가 아니라 그 조개를 캐서 진주를 얻은 인간일 뿐이다. 조개에게 진주 생겨서 좋냐고 물어봐라. 퍽도 좋아하겠다”(라는 말과 함께 조개가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그때 상처만 안받았어도, 속에 이딴 거 없이 사는 건데.”

 

이런 조개의 말 옆에 저자는 덧붙인다.
“누군가 상처를 통해 배운다 해도 상처를 주는 행위가 옹호되어서는 안 된다.”

 

뭔가 쩡~ 하고 가슴을 울리고,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기발한 반전이 있었다. 책 깨나 읽고 써온 나의 가슴을 한 방에 움직이는 이거 뭐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블로그의 애독자가 되었다. 보다 보니 ‘서늘한여름밤’은 대학원에서 임상심리를 전공하고, 대학병원에서 임상심리 수련과정을 들어갔다가 바로 그만두고 나온 이쪽 물 좀 먹은 사람이었다. 어쩐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새 웹툰을 기다리는 재미로 지내왔다. 그러던 중 웹툰을 모아서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라는 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나는 블로그로 매회 보았지만, 이번에 추천사를 쓰게 되면서 모아놓은 내용을 일찍 받아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추천사 의뢰가 많이 들어오지만 대부분 거절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블로그 애독자의 한 사람으로 이 책의 추천 의뢰가 들어온 것만은 기쁜 마음으로 한 번에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 거기다 심리 이야기니까 말이다.

 

웹툰을 읽으며 내가 느낀 서늘한여름밤의 이미지는 예민함과 까칠함이다. 저자는 얼마 전까지 정해진 길대로 심리학과를 나와 임상심리 석사를 하고, 유명 대학병원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수련 과정에 들어갔다. 전력질주를 하며 살아왔지만 자발적으로 튕겨져 나왔고, 그 후 소외감과 열등감을 느끼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다. ‘난 괜찮아’, ‘옳은 결정이야’라고 여러 번 되뇌지만, 한 편으로 몇 년 후 웹툰에서 예민하게 투덜거린 ‘시스템의 거지같음’과 ‘보수적 권위주의’, ‘지나치게 바쁘고 소진됨’을 견뎌낸 친구들은 전문가가 되었을 때 자신은 여전히 이 모습일까 두렵기도 하다. 이런 인식은 현실적이고 상식적으로 지극히 당연하다. 이 불안에 대해 저자는 이제는 “남들에게 보여주겠다고 이를 갈며 살고 싶지 않다“는 결심으로 답한다. 물론 결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돈과 안정, 소속감을 놓아야 하겠지만. 혼자 남겨진 것을 견뎌내는 것만큼 얻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그 안에서 저자의 단호함이 또한 느껴졌다.

 

이 책은 처음부터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 만들어졌다기보다, 정해진 트랙 위를 질주하다가 탁 멈춰버린 한 사람이 자기 마음 따라 가기로 결심한 후 생긴 불안을 정리하고 다스리기 위해 혼자 그림을 그리고 올리면서 세상과 소통을 하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자가치유의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지향점이 외부를 향하고 거기에 맞추기보다 저자 자신의 속내에 맞춰있다.

 

그런 점에서 엄마와 관계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말한다. 내 눈에 서늘한여름밤의 어머니는 ‘육아서’에 나오는 적당한 거리를 두며 아이가 혼자 자립할 수 있게 키우는 어머니의 전형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서늘한여름밤이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면서 어머니에게 말하면 “선생님이라고 다 맞는 게 아니야”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외고에 떨어지는 실패를 경험하자 “실패는 축하할 일이지”라고 위로 아닌 위로,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말을 한다.

 

저자는 어머니가 자식을 독립적 존재로 크기를 바랐다고 한다. 반면 저자는 이런 어머니로부터 사랑 받는 자식이 되고자 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런 면은 저자가 자라나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아이러니한 면을 보인다. 그의 대인관계에서 모든 이는 독립적 존재라 생각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근본적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은 것을 느끼며 불안해한다. 이 불편은 결혼할 남자를 만났을 때 비슷하게 반복되어 관계에 불안해 거리를 두고, 끝없이 시험했다. 불안을 확인해도 언제나 같은 자세로 확인해주고 그 자리에 있어주는 파트너를 만나면서 비로소 안정을 찾으면서 “너한테만큼은 언제나 칭찬받고 싶다”고 고백한다. 냉정하게 객관적 평가를 받기보다 한없는 지지와 칭찬을 해주는 항구와 같은 존재를 갈구한 것이고, 남자친구를 만난 후에 어느 정도 해갈이 될 수 있었다.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에게는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파트너가, 그 반대로 엄격하고 냉정한 사람에게는 관대한 사람이 파트너로 필요하고 그것이 상호발전과 성숙을 위해, 또 관계의 균형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에서 서늘한여름밤이 말하는 소소한 일상과 중요한 고민의 결과들을 보면서 느낄 수 있다.

 

이 글 전체에서 느껴지는 서늘한여름밤의 기조는 저자가 ‘my bitter sweet mother'에서 묘사한 어머니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이성적이려고 노력하고, 예민하면서 수준 있는 테이스트를 갖고 있고, 독립적인 삶을 지향한다. 시류에 휘말리기보다 개인의 주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허전하고 비어있는 느낌이 있다는 것도 함께 느끼고 있다는 것이 서늘한여름밤의 자기성찰과 고민의 결과물이다. 그냥 “나 이미 이렇게 자라왔어. 어쩌라고, 나 이런 사람이니까 너희들이 이걸 봤으면 그런 줄아. 앞으로도 이런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으니까”라고 소리치기보다, 어떻게 해서 마음의 흐름을 그림과 글을 통해 깊이 이해하고, 성인이 된 이후에 새로운 관계를 찾아 빈 공간을 채우면서 한 발 한 발 성숙한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지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 점이 이 책이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완벽할 수 없는 존재다. ‘자아의 확장’이자 ‘내 뱃속의 아이’같은 한국의 전형적인 어머니상과 다른 어머니를 가진 새로운 존재로 자라났다. 아마 많은 육아전문가들이 책에서 지시하는 이상적인 면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어머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존재로 자라난 것은 아닌 듯하다. 본인은 결핍을 느끼고, 존재에 불안해한다. 그럼에도 자아의 힘은 강하고 많은 긍정적인 장점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를 기반으로 서늘한여름밤은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가면서 말한다.


“최선을 고민하고 어디로 가는지 몰라 불안해하고, 잠 못 드는 밤이 있지만 멈춰있지 않은 채 매일의 발자취를 남기며 나아가고 있는 자신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려 하고 있다.”

 

그것이 자신에게 뿐 아니라 공감하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용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런 작은 용기와 수많은 오늘의 실수를 인정할 때, 막 뛰다가 넘어진 다음에 ‘난 망했어’라고 절망하기보다 잠시 쉬고 나서 숨을 고르고 나면 다시 일어서 뚜벅뚜벅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누누이 말하지만 마음의 건강함은 완벽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완벽할 필요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말이다.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서늘한여름밤 저 | 예담
막연한 위로 대신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며 청춘들의 공감을 얻어내고 있는 작가 '서늘한 여름밤'의 네 마음을 지지하고 내 마음을 지켜나가는 이야기. 저자 서늘한여름밤은 남들의 속도에 맞춰 삶을 전력 질주하다가 심리적 문제를 겪고 퇴사를 결심한 후 자신의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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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학 부모가 자녀에게 던지는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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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브랜드 경영 분야의 세계적 리더
케빈 레인 켈러(Kevin Lane K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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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석학 부모의 질문 “잠깐, 뭔가 잊은 건 없니?"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집을 나서기 위해 차에 올라탈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잠깐 멈추고 무엇인가 잊은 게 없는지 생각해 보렴. 뭔가 잊은 게 없니?” 출발하기 전에 5초 정도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 그게 다였습니다. 아주 간단하죠.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절대 스스로 무언가를 떠올리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질문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을 잊고 있지 않은가?’라고 핵심을 지적하면서, 아이들 스스로 계획을 상기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이 질문으로 아이들은 집을 나서기 전에 예정된 활동이나 행사에 아무 문제없이 참여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모든 것을 멈추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절대 잊으면 안 되는 것을 먼저 준비하게 되었죠. 스스로 묻지 않으면 중요한 것을 얼마나 자주 까먹는지 깨달음과 동시에, 단 몇 초 동안 모든 것을 멈추고 “뭐 잊은 건 없나?”라고 물어보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실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스마트 싱커의 머릿속을 탐구하는 심리학자
아트 마크먼(Art Mark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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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석학 부모의 질문 “무엇을 배웠니? 설명해볼래?”

 

저는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랐을 때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물었고 배운 것을 설명해달라고 했습니다. 과학, 수학, 역사 등 지금 배우고 있는 과목 같은 것들 말이죠. 아이들에게 설명을 요구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아이 스스로 무언가 설명하고 싶은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정보가 부족해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지식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더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이처럼 아이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무언가 배우고 익히는 것에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개념을 배우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하고, 확실히 익히려면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은 것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은 제가 자주 설명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질문할 때를 대비해서 훌륭한 설명을 준비해놓곤 했습니다. 덕분에 자기설명의 과정을 완전히 체득하게 되었고, 나이가 들수록 더 효율적인 학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최고의 석학들은 어떻게 자녀를 교육할까마셜 골드스미스,알란 더쇼비치,윌리엄 폴 영 등저/허병민 편,기획/박준형 역 | 북클라우드
사회ㆍ경제ㆍ과학ㆍ예술 등 각 분야의 선구자 혹은 권위자라고 불리는 석학들은 어떻게 자녀를 교육할까? 만약 내 아이가 세계적인 법률가, 심리학자, 교육가, 디자이너, 베스트셀러 작가의 자녀로 태어났다면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 참여한 ‘한국형 부모 성장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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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이건 내가 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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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뇌가 기안하고 우뇌가 결재한다.’ 일인 출판사를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고 말하곤 한다. 맞다. 한마디로 내 맘대로 결정한다. 좋겠다고요? 책임도 혼자 져야 한다. 그러니 결정은 오래 걸리고 고민의 가짓수도 많다. 그럼에도 ‘어머 이건 사야 해!’ 하고 첫눈에 반해 구매 버튼을 누를 때가 있다. 이 책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가 그랬다.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젊은 사회학자다. 젊은 사회학자. 야구에 왼손잡이 강속구 투수는 지옥에 가서라도 데리고 온다는 말이 있다는데, 젊은 사회학자 또한 ‘좌완 파이어볼러’만큼이나 탐이 나는 존재가 아닌가. 더욱이 그의『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한국에도 ‘사토리 세대’ ‘달관 세대’라는 말로 강한 인상을 남긴 책이었다. 일본 아마존을 탐험하다가 바로 그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신간을 봤다. 제목이 ‘후루이치 군, 사회학을 다시 배우세요.’ 사회학을 다시 배우라고? 그때 떠오른 말이 바로 이 말이었다. ‘어머! 이건 내야 해!’

 

나는 사회학을 전공했다. 워낙 공부를 안 했어서 사회학을 전공했다고 말하기보다 사회학과를 다녔다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덧없는 일이지만 20대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은지,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가 종종 있다. 20대엔 역시 배낭여행이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때보다 좀 더 넓게 사람을 만나고 경험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엔 돌아갈 수 있다면 공부를 하고 싶다. 요새 부쩍 전공 공부를 좀 열심히 했더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대학 시절 뭘 배웠나 하면 텔레토비 노래에 사회학자 이름을 갖다붙여 부르던,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 꼬옹트 사회학과 사회학과 아이 좋아’ 이런 노래 따위라 참담한 마음이다. 그런데 마침 책 제목이 ‘사회학을 다시 배우세요’라니. ‘나는 재밌게 읽겠다, 나 같은 사람이 몇 명일지 몰라도 그들에겐 도움이 되는 책일 것이다.’ 나 홀로 기획회의는 그렇게 명쾌한 결론이 났다.

 

후루이치 노리토시도 비슷한 동기에서 이 책을 썼다. 책을 내고 유명해지긴 했는데, 이곳저곳에 불려다니며 사회학자라고 소개되는데, 정작 본인에게 사회학이 뭐냐 물으면 답이 궁색해지더란다. 그래서 사회학을 공부하기로 하고 일본의 사회학자 열두 명을 직접 찾아간다. 그리고 묻는다. 도대체 사회학이 뭔가요?

 

사회학의 거장들, 날카로운 신예들과 대화를 주고받은 내용 덕에 여느 사회학개론보다 편하게 사회학에다가갈 수 있었다. 중간 중간 아무말대잔치, 이를테면 우에노 지즈코에게 던진 ‘사회학을 하면 성격이 나빠지나요?’ 같은 질문은 긴장감을 무장해제당하고 유쾌하게 대화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묵직한 질문들도 오간다. 최근 나오는 책 제목들이 알려주듯 일본은 인구절벽, 개호, 패러다이트 싱글, 지방 소멸, 극우 회귀 같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품고 있다. 이 문제에 사회학자들은 내놓은 진단들은 사회학이 결국 무엇을 다루는지를 다양하게 펼쳐 보여주었다.


그래서 제목을 쉽게 정했다. 번역 원고를 받아 저장하며 파일명으로 ‘사회학을 배우긴 했습니다만’라는 가제를 붙였었다. 역시나 지극히 일인칭으로 내 마음을 담은 제목이었다. 그러다가 제목안을 정리하며 내용을 곱씹으니 ‘이런 게 사회학이었지’ ‘이런 게 사회학이 할 일이지!’ 이 두 가지가 내가 이 책에서 얻은 바였기에 이를 중의적으로 담아 ‘그러니까, 이것이 사회학이군요’로 제목을 정했다.

 

책을 고르는 일부터 만드는 과정까지, 이 책은 오롯이 나에게 와닿은 마음 그대로를 담았다(표지의 저 개 또한 우리 집 개가 모델이다.) 그렇게 만든 이 책이 사회학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있죠?), 사회학을 배우긴 했는데 여전히 모르겠다는 이들에게(많죠?) 가닿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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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정 조기영 부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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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고민정의 글을 마주했을 때 든 생각은 ‘참 따뜻하다’였다. 결혼 6년 만에 갖게 된 첫째 아이 은산이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로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기고한 것이 화제가 되었고 그 글에 이끌려 저자로서 그녀와 만나게 되었다. 실제로 본 저자의 느낌도 그랬다. 당시 방송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 아나운서였지만 소탈하게 SNS나 블로그를 통해 일상의 공감을 전하며 소통하는 그녀였다.


그녀만큼이나 잘 알려진 그녀의 남편, 조기영 시인의 글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생각의 크기는 넓고 사유는 치열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지향점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로 존재의 이유를 짚어가는 대목에서는 남다른 깊이감이 느껴졌다.

 

따뜻함과 치밀함. 각기 다른 두 온도가 서로의 체온을 주고받으며 글의 짜임새를 촘촘하게 엮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과정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 때는 속도를 내며 몇 개의 꼭지 원고가 연달아 들어오기도 하고 어느 때는 아주 조용하고 더디게 진행되기도 했다. 2014년 봄을 맞이하면서 진행된 책은 2016년 가을에서야 탈고가 되었다. 다른 색깔의 원고가 결을 맞춰가면서 끝내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드디어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구나, 반갑고 설레는 마음이 일었다.

 

원래는 탈고가 끝남과 동시에 2016년 연말 출간을 목표로 진행하던 책이었다. 하지만 2017년 초 저자가 문재인 대통령 후보 캠프에 전격 합류하면서 곧 당도할 출간은 표류되었다. 이미 출간 준비를 마친 터라 사실 크게 이슈화되었을 때 출간하고픈 게 욕심이었다. 더더욱 조기 대선 정국이라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이 아니면 책이 사멸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개인의 욕심이 앞섰다. 저자들은 오죽 했을까. 무려 3년 동안 준비한 책이었다.

 

18년간 이룩한 사랑의 역사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것이었다. 부부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 은산이 은설이에 대한 애정 어린 이야기까지 담긴 글이었다. 저자들은 책에 담긴 모든 사진을 직접 찍고 골랐으며 어떻게 독자들에게 전달이 될까, 처음 마음을 전하는 사춘기 아이들처럼 설레어했다.

 

하지만 출간은 일단 보류. 혹시나 책 출간으로 인해 오해를 빚고 민감한 상황에서 말들이 오가면 예기치 않게 누가 될 수 있다는,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출판사에서는 한 달만 지켜보자고 했고 3월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탄핵 결정 이후 대선 상황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저자가 할 일은 더욱 많아졌다. 앞날의 일은 알 수 없지만 마음이 가리키는 곳에서 그 순간에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바쁜 선거 일정 속에서도 저자는 짬을 내서 책에 대한 의견을 꼼꼼히 메일로 보내왔다. 보내는 시간은 늘 이른 새벽이었다. 긴 겨울을 보낸 5월의 봄.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걱정했던 책은 그렇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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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하우스 제공

 

간절한 바람, 더 큰 소망을 위해

 

그렇게 탄생한 책임에도 여전히 조심스럽다. 책이 입고되자마자 저자들은 출판사를 찾아와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인을 했다. 갓 인쇄된 책의 따뜻한 감촉이 저자의 손끝에서 전해져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아름다운 순간은 이런 기다림 끝에 찾아온다고.’

 

내가 보아왔던 모습 그대로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소중하게 대하는
따스하고도 한결같은 모습을 간직한 저자에게,
그 어느 때보다 진심 어린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아름답고, 용기 있는
당신이라는 바람이 내게로 불어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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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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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페미니즘이 싫다”며 IS로 떠난 일을 두고 한 칼럼니스트가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칼럼을 쓴 뒤, 한국 사회에서는 들불처럼 페미니즘이 번지기 시작했다. ‘주간 페미니즘’이라 불릴 정도로 페미니즘 관련서가 쉴새없이 출간되고, 이런 책을 읽고 눈을 뜬 많은 여성들이 돌아갈 다리를 불태우고 새로운 길을 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하면 ‘메갈’이니 ‘프로불편러’니 할 정도로 페미니즘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여전히 색안경을 쓰고 바라본다. 페미니즘이 정말 ‘남성혐오자’들이 외치는 여성만을 위한 운동인 걸까?

 

지인과 페미니즘 책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가 “벨 훅스가 쓴 『행복한 페미니즘』이라는 책이 있는데, 읽어보고 싶은데 절판된 책이라 아쉽다”고 해서 궁금함에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이렇게 얇은 책에서 이렇게 폭넓게 페미니즘을 다루다니’ ‘이렇게 압축적으로 페미니즘 이론을 정리해주다니’ 하고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절판된 상태로 두기에는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었기에 얼른 판권을 알아보고 새로운 모습으로 편집을 시작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Feminism is for everybody)’이라는 원제를 살려서 말이다.


미국 중남부의 흑인 격리 지역에서 태어나 가부장제 가정에서 자란 벨 훅스는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에 눈을 뜨게 되고, 인종과 성별 등 모든 차별에 저항하며 계급, 인종, 자본주의,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책을 써왔다.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꾸준히 써온 미국의 대표적 페미니스트이지만, 그녀는 페미니즘 이론이 “너무 학술적”이라거나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투성이”라는 불만을 거듭 듣게 된다. 어떻게든 모두에게 페미니즘 정치를 이해시킬 수 없다면 페미니즘 운동은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한 벨 훅스는, 축약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잘 읽히는 페미니즘 책이 나오면 좋겠다 하고 기다린다. 그렇게 20년 넘게 기다렸지만 아무도 써주지 않았기에 결국 자신이 쓸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원서로는 120페이지 남짓, 한국어판도 260페이지 남짓인 이 얇은 책 안에는 여성의 몸, 여성에 대한 폭력, 연애와 결혼, 양육, 일터에서의 여성 등 여성의 삶 전반에 걸친 페미니즘 정치와 그 실천에 대한 이야기가 쉽고 간결한 문체로 명쾌하게 소개되어 있다. ‘페미니즘 독서 클럽’을 통해 다양한 페미니즘 관련서를 공유하고, UN 여성 인권 신장 캠페인인 히포쉬(HeForShe)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등 페미니스트로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엠마 왓슨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읽은 후 벨 훅스와 교류를 이어가며 “벨 훅스와의 페미니즘 대화는 언제나 즐겁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벨 훅스는 누구나 접근하기 쉽게 페미니즘에 대해 써내려간다.

 

벨 훅스는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그것이 여성과 남성을 포함한 모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냈는지 보여주면서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혐오운동’이 아닌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기 위한 운동’임을 거듭 강조한다. 페미니즘 운동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게끔 돕는, 나아가 우리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해방운동임을 보여준다.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임을 전한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란 게 한국 사회에서 가능할까? 아직은 더 많이 설치고 말하고 생각해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조금씩 페미니즘을 향한 이러한 목소리가 계속 이어질수록 조금 더 페미니즘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조금 품어본다.

 

“한 걸음 더 다가오라. 페미니즘이 당신과 우리 모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지 지켜보라. 더 가까이 다가와 페미니즘 운동이 무엇인지 직접 확인하라. 더 가까이 다가오라. 그러면 더 잘 보일 것이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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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딱 벗은 『은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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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망가’라고 명명된 일본 만화 중에는 ‘레전드’라는 별명이 붙는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국내에서 단연 자주 거론되는 것은 『나루토』『원피스』, 『블리치』다. 이런 대단한 ‘망가’들의 이야기는 위키피디아만 조금 뒤져도 다 알 수 있을 정도이니, 오늘은 이 만화들보다 국내 인지도는 비교적 낮지만 역시 레전드에 속하는 10년 넘은 주간 점프 장기연재 시리즈 『은혼』을 소개해볼까 한다.

 

작가 소라치 히데아키는 처음 『은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랜 기간 『점프』에서 매주 연재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소라치는 1권 말미에 어떻게 이 만화를 시작하게 되었는가를 적나라하게 밝힌다. 작가의 문장이 재미있기에 그대로 실어본다.

 

“(전략) 일은 담당인 몬치치 오니시의 한 마디에서 시작됐다. “내년에 대하드라마에서 신선조 다루는 거 알지? 거기에 편승해.” 당시 연재용 만화를 구상하고 있던 나는 본 적도 없는 해리포터를 껍데기만 살짝 빌려 일본풍으로 다듬은 요마퇴치학원물로 한 건 터뜨릴 예정이었다(터질까?). 게다가 시대극은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시대극은 대사가 제한돼서 싫어요. 그리고 속이 뻔한 짓을 어떻게 합니까, 몬치치!”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내가 왜 몬치치야?! 넌 현대물을 그려도 재미없어. 그리고 넌 해리에 편승하려고 했잖아!” “해리는 괜찮아! 외국인이니까.” 하더니 결국 “시대설정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판타지다! 판타지 시대극이다!! 신선조와 괴물과 칼싸움 얘기면 돼!!”라며 윽박지르는 것이 아닌가.” - 『은혼』 1권 권말 페이지 ‘홀딱 벗은 은혼’ 중에서

 

이렇듯 『은혼』은 어디까지나 즉흥적인 산물인 탓에 세계관이 상당히 복잡하다. 우주인이 일본에 와서 일으킨 양이전쟁 이후 지구는 전근대와 미래가 공존하는 세계로 변한다. 어찌 보자면 지금의 일본과 전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신주쿠하고도 가부키초 1번지, 한 허름한 스낵바 ‘오토세’ 2층에 사카타 긴토키는 해결사 사무실을 차린다. 이후, 양이지사를 비롯해 막부 관련 인물들, 신선조, 우주해적이 차례차례 사카타를 찾아오며 저작권 문제와 노출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대소동을 벌인다.

 

2004년 시작될 당시만 하더라도 소라치를 비롯해 독자, 담당자 그 누구도 이 작품이 10년 넘게 지속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실제로 햇수가 넘어 3년, 5년이 지날 때마다 소라치는 여러 번 엄살을 부려왔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언제쯤 되면 그리기 쉬워지나.” 소라치의 염려와 달리 나날이 치솟는 인기는 영화로 뻗어나가고 있다. 국내 개봉이 확정된 실사판 영화 <은혼>의 주연은 무려 오구리 슌으로, 소라치는 시리즈 27권 236화 ‘생일파티에서는 평소의 그 녀석이 다른 녀석으로 보인다’ 편에 ‘오구리 슌스케’로 그를 출연시킨 바 있다. (『은혼』 65권 작가의 말 페이지에 실사판 영화와 관련된 사연이 상세히 실려 있다.) 평소 같으면 만화 원작 실사판 영화가 나온다고 하면 의구심부터 일겠지만 이번에는 기대가 크다. 감독이 바로 그 후쿠다 유이치다. 후쿠다 유이치는 일본통 사이에서는 <변태 가면> 시리즈나 <용사 요시히코> 시리즈 <어린이 경찰> 시리즈 등으로 이미 단단한 마니아층을 확보했다.

 

소라치는 『은혼』이 최종장에 들어갔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라치의 마음처럼 『은혼』이 마무리되는 게 가능할까. 팬들이 간곡히 막을 것 같다. 나 역시 그 중 한 명인 고로 사심을 듬뿍 담아 칼럼을 마무리해 본다. “소라치 상, 5월 25일 생일 축하해요. 최종장 같은 소리 말고 천 년 만 년 『은혼』연재해 주세요.” 이 칼럼 보시는 분들 중 혹시 일본어 잘 하시는 분 계시면 이런 팬 여기 한 명 있다고 소라치에게 알려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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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들은 언제부터 찍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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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어느 주말, 나도 많은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광화문 광장에 있었다. 그때, 이 말을 누가 믿어줄지 모르지만, 어둠이 내린 광장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마음의 형체를 나는 분명히 보았다. 마음에도 실체가 있다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발 디딜 틈 없이 모여든 바람에 서로의 체온이 느껴질 정도로 어깨를 겾게 된 백만의 군중이 어둠을 향해 무언으로 내뿜는 그 무엇, 함께 외치는 토막난 구호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어떤 마음이 형상을 갖고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우리가 지금 어떤 큰 소용돌이 속에 있구나 싶었다. 이 소용돌이는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그래서 우리는 물론 우리 이후의 사람들과도 공유해야 할 그 무엇이다. 이것의 기록과 공유에 가장 적합한 매체는 사진일 테지. 사진집이 필요해. 그런 생각을 했다. 특별할 건 없었다. 출판하는 사람이라면 뭐든 책으로 만들 생각부터 하니까.

 

그럼에도 그 순간이 유난히 잊히지 않는 것은 바로 그때 내 생각에 약간의 변질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만들겠지'였는데 '내가 만들어야겠다'로 변해 버린 것이다. 거창한 사명감을 느꼈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모두가 하고 있다고 믿고 있을 때 실은 아무도 하지 않는 경우가 참 많더라는 삶의 경험칙이 나를 한번 불안하게 흔들었을 뿐이다. 그랬을 뿐인데도 금세 머리가 아주 복잡해지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가장 먼저 밀려온 것은 후회였다. 때는 국회에서 박근혜에 대한 탄핵안이 막 가결된 참. 이것이 혁명의 과정이라면 중반쯤에 접어들었으려나. 이제부터 사진 기록을 시작하자가 하기엔 너무 늦은, 중요 장면이 꽤 많이 지나가버린 시점이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인 이상엽 씨에게 전화를 건 것은(아니, 전화가 왔던가? 아무튼) 그런 후회감 속에 있을 때였다. 나는 진작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얘기를 했다.

 

"이미 기록하고 있어요." 이상엽 작가가 말했다.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노동 현장과 4대강 등 우리 사회의 아픔과 갈등이 있는 곳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달려가 사진을 찍어온 사람이다. 무거운 사진 장비를 들고 차도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안 가는 데 없이 현장을 누비는 것을 보면 감탄을 넘어 존경심을 품게 된다. 나는 내 몸뚱이 하나 끌고 방문 밖에 나가는 것도 버거운데. 그런 그가 광장을 기록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다행이다 싶어 책 작업을 같이하자고 말했다.

 

"혼자서는 다 못 찍어요." 이 거대한 물결의 기록을 혼자서 감당하기는 당연히 어려웠다.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 사람이 많단다. "여럿 있어요. 조직해야 되겠네."

 

"그 사람들은 언제부터 찍었을까요?" 내가 물었다. 최소한 최순실이 수면 위로 부상한 시점, 국정 농단에 항의하는 최초의 촛불이 광화문에 밝혀지던 시점부터는 사진이 있었으면 싶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다들 몇 년 이상 찍었죠. 10년, 20년 된 사람도 있고."

 

사진가 경력을 묻는 걸로 들렸나 보다. "그게 아니라 이번 사태에서 어느 시점부터 찍었냐고요."
"그러니까요. 다들 몇 년 전부터 계속 찍어왔어요. 다 연결되어 있는 일이에요."

 

그제서야 감이 잡혔다. 난데없이 솟아나는 문제란 없다. 우리가 어느 시기를 지목해 마치 거기에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것처럼 잘라 이름을 붙이지만 그것은 모두 연결된 전체의 일부일 뿐이다. 탄핵이 있기 전에 국정 농단이 있었고, 국정 농단이 있기 전에 이화여대 사태가 있었다. 또 그 전에 세월호 참사, 사드 배치,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 위안부 합의, 예술가 탄압, 개성 공단 폐쇄, 청년 실업, 노동 조건의 악화와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투쟁과 억울한 죽음, 농정 파탄과 백남기 농민의 사망, 국정원의 댓글 공작...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는 모순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시작점을 찾아 거슬러올라가다 보면 단군 때까지 올라가야 할지 모른다. 그런 모순을 평생 기록해온 사람들에게는 새삼 광화문의 촛불이 시작점일 수 없었다.

 

10명의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그렇게 조직되었다. 그들은, 낮에는 현재 진행중인 격동의 현장을 기록하면서 밤에는 오랫동안 찍어온 사진을 선별하는 강행군을 했다. 여러 차례 기획회의를 거치면서, 현상과 원인이 연결되어 있는 이 사태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시간 역순으로 편집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단군 때까지는 갈 수 없어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던 무렵까지로 끊었다. 그럼에도 사진이 너무 많았다. 사진가들 중에는 미디어에 소속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프리랜서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사진 기록을 그렇게 엄청나게 열심히 해놓았다는 것이 놀랍고도 고마웠다. 때로는 물대포를 덩달아 맞고 나동그라지면서, 때로는 폭도로 변한 태극기 부대에게 린치를 당하면서 기록한 사진들이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기억을 담당한 전사들이다. 기억하지 못하면 역사의 불행이 반복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소중한 존재들이다.

 

사진집 『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지난겨울의 어느 주말에 나 한 사람이 기획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그 기억의 전사들이 기획한 책이다. 우리는 민들레가 절대 멸종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씨앗을 엄청나게 날리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포착해놓은 이 기억들도 엄청나게 퍼져서 절대 멸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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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기술이 아니고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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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기술이 아니고 태도”라는 거예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나를 존중하고 듣고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면 누구나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침묵도 대화라고 하잖아요. 친구랑 대화를 하는 것도 일종의 인터뷰에요. 친구가 울고 있는데, 자꾸만 너 왜 우니?”라고 물으면, 폭력일 수 있어요. 그럴 때는 가만히 있다가 친구가 울음을 그쳤을 때, “할 이야기 없어?”라고 묻는 게 낫죠. 상대의 상태에 맞춰 존중하면서 대화를 하는 게 중요해요.”


『지승호, 더 인터뷰』지승호 인터뷰에서


누군가 물었다.

 

“인터뷰가 왜 좋아?” 3초간 생각하고 답했다. “지금은 마냥 좋진 않은데, 나는 인터뷰하면서 듣는 이야기가 뼈가 되고 살이 돼. 진짜로. 내 삶에 도움이 돼. 그리고 내가 묻지 않으면 못 듣는 이야기가 있잖아. 그런 거 같이 나눌 때가 좋아. 일대일로 나눈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효용 가치가 있으면 기쁘잖아. 또 내가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 이해 안 되는 부분도 많고. 나랑 다른 삶을 사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호기심이 있어.”

 

“힘들 때는 없어?” “물론 있지. 생각보다 엄청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 요즘이야 좀 다르지만, 예전엔 한 사람 만나면 그 사람이 언급된 웬만한 자료는 다 찾아봤어. 책은 여러 권 못 읽어도 근황 같은 건 진짜 꼼꼼히 살폈지. 암튼 만나기까지 은근 시간이 걸려. 그리고 녹취 푸는 게 최악으로 싫어. 타자가 느린 편이 아니지만, 나는 녹취를 푼 다음에 문장을 일일이 다 고치거든. 구어체를 살리는 것도 좋지만 어쨌든 이게 텍스트로, 눈으로 읽는 거잖아. 눈으로도 잘 읽히면서 리듬감을 살리려고 해. 조사 같은 것도 중복하지 않으려고 하고. 대명사, 접속사는 되도록 빼려고 하고. 음. 이렇게 정리하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려. 그러면서 또 말투는 좀 살려야 하고, 약간의 긴장감도 줘야 하고. 끄응.”

 

“너 되게 잘하나 보다? 프로처럼 말하네?” “특별히 잘한다는 생각은 없어. 진심. 다만 내가 쓰고 싶은 건 유용한 이야기, 누구라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 현실에서도 보탬이 되는 이야기, 한 문장이라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판다면 그게 좋더라.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이야기를 잘하잖아. 막 질문 몇 개 안 했는데도 줄줄 나와. 그런데 말이야. 그 훌륭한 말조차도 묻지 않으면 못 들어. 그런데 사람들은 가끔 착각하더라. 인터뷰어는 그림자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기록하는 사람, 이거 굉장히 중요하거든? 창작자도 중요하지만 전달자도 정말 중요해. 그런데 참 함부로 말하는 경우가 있어. 때때로 화나지. 자기가 해보면 좀 알 텐데. 이거 육체적으로도 꽤 고된 일인 거. 녹취 안 풀고 질문만 하면서 ‘내 인터뷰’라고 말하는 사람 있잖아. 그건 자기 인터뷰 아닌 것 같아.”

 

“노하우 같은 거 있어?” “글쎄, 상대에 따라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하긴 하지만 언제나 필요한 건 오픈 마인드지. 그리고 표정도 중요해. 경청하는 눈빛, 이 사람이 그냥 듣는 게 아니라는 제스처? 약간의 호감을 표현하는 것도 좋지. 자기 좋다는 사람 싫을 수 없잖아. 하지만 긴장감도 좀 있어야 하거든? 팬심 같은 거 드러내는 건 별로야. 내가 조금 신경 쓰는 부분은 내가 궁금한 것보다 상대(인터뷰이)가 말하고 싶은 걸 먼저 물어주는 거야. 그러면서 내가 궁금한 질문을 훅, 훅 던지는 거지.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어느 순간 상대가 ‘어, 당신 이런 것도 알아? 어, 내 생각 꽤 잘 이해하네?’싶은 눈빛을 보낼 때가 있어. 그 이후는 대화가 술술 풀리지. 묻지 않은 이야기도 막 해주고. 상대도 이야기 할 맛이 나는 거야. 그럼 인터뷰는 성공.”

 

멋진 이야기를 쓰고 싶어 좋아하는 단어, 표현 등을 써놓은 수첩이 하나 있다. 10여 년이 된 수첩이다. 기사를 쓰다 이야기가 안 풀리면 종종 그 수첩을 꺼낸다.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표현들, 인터뷰 기사에 하나 인용해보려다 이내 수첩을 닫았다. 상대가 그렇게 멋지지도 않았는데, 과한 상찬을 늘어놓은 인터뷰 기사를 읽을 때, 나는 눈살이 찌푸려지기 때문이다. 인터뷰도 정직해야 하지 않은가, 시간 약속 하나도 안 지킨 상대를 두고 온갖 상찬을 늘여놓으면 그건 독자를 속이는 게 아닐까. 그런데 간혹 최대한 건조하게 쓴 인터뷰를 두고, “담백해서 좋았다”는 평을 들으면 나도 내가 무엇을 썼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뇌가 박힌 사람이라면 자기가 한 말이 녹음이 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웬만하면 기사에 토를 달지 않기를 바란다. 인터뷰를 했으면 이제 그 자료는 인터뷰어의 것이다. 물론 팩트 체크를 해야 하고, 오프 더 레코드라도 밝히고 말한 부분은 쓰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인터뷰라는 조건 하에 대화를 나눈 게 아닌가. 자신도 인터뷰로서 얻는 것이 1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인터뷰어에게 맡겨야 한다. 믿어주면? 잘 써준다. 성실하게 답하면? 성실하게 옮긴다.

 

2년 전, 대한민국 독보적인 인터뷰어 지승호 저자를 만났다. 대학생 때부터 그의 기사를 열심히 본 바 있었다. 나는 살짝 긴장됐으나 티를 내지 않았다. 내겐 너무 선배 아닌가? 속으로 나를 평가하겠지 싶어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문을 텄다. 하지만 웬 걸, 선배 자세가 아니라 동료의 제스처였다. 내 질문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없었다. 지적은커녕 고마운 마음만 표했다. 인터뷰를 마쳤으면 이 원고는 인터뷰어의 것임을 존중했다. 상대가 나를 존중한다는 느낌이 들면 게임 끝. 그의 말처럼 모든 사람과의 대화는 기술이 아니고 태도다.

 

한 작가는 섭외 전화 목소리로 인터뷰를 할지 안 할지를 정한다고 한다. 목소리가 멋지냐 초라하냐가 아니다. 정확한 의사표현,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 3분 통화에서도 듣는 사람은 듣는다. 메일 한 줄, 문자 한 줄, 메신저 한 줄에서도 상대가 읽힌다. 내가 배려하면 나도 배려를 받는다. 인터뷰는 말발로 하지 않는다. 글발로도 하지 않는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성실, 태도가 관건이다.

 

지승호 인터뷰 다시 보기

‘다시 읽는 인터뷰’ 한눈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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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리뷰 대전] 군대와 중고등학교에도 하나씩 나눠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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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씨는 30대 중반의 주부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대학을 졸업한 후 우여곡절 끝에 홍보대행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정대현 씨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의 삶의 여정을 얼핏 보면 그야말로 평범하고 특이할 게 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소설은 김지영 씨의 삶 구석구석을 들추어내면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감내하고 겪어야 했던 부당한 대우와 시선들을 보여준다. 어머니인 오미숙 씨도 겪었고, 딸인 정지원 씨도 마주할 현실 말이다.

 

딸이란 이유로 태어나기 전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고, 학교에선 면티와 운동화가 허용된 남학생과는 달리 여학생에게는 치마에 스타킹과 구두만 허용됐다.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회사에서도 부담스러워 한다는 이유로 취업 추천에는 남학생들만 선발됐고, 계속되는 취업 실패에 누구보다 속상한데 아버지로부터 얌전히 있다 시집이나 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의 선배 여성 팀장은 ‘여자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회식 자리에 끝까지 남았고 야근과 출장을 늘 자원해야 했다.

 

장모를 모시고 사는 걸 보면 만난 적은 없지만 김은실 팀장의 남편은 좋은 사람일 거라고 했다. 김지영 씨는 17년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는 (중략) 돌봄 노동은 전혀 하지 않으셨다. 다른 집안일도 거의 안 하셨다. 어머니가 차린 밥을 드시고, 어머니가 빨아 놓은 옷을 입고, 어머니가 청소한 방에서 주무셨다. 아무도 어머니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다. (.111쪽)


결혼 후 어른들이 기다리는 ‘좋은 소식’이 없자 당연히 그 원인은 남편이 아닌 김지영 씨의 문제로 결론이 났다. 임신한 아이가 딸이라고 말하자 친정 어머니는 다음에 아들 낳으면 된다고 했고 시어머니는 괜찮다, 라고 했다. 그는 그 말들이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육아를 위해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고, 그 한 사람은 당연히 김지영 씨였다. 마땅히 부부의 몫이어야 할 살림과 육아는 당연히 그의 몫이었고, 정대현 씨는 그저 많이 돕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와 싸구려 커피를 마시면서 잠깐 쉬려고 했을 뿐인데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는 맘충”이란 말을 들어야 했다. 한국 사회에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자행된 일들이 너무 무거웠던 김지영 씨는 결국 한 번씩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고,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나는 82년생 김은영 씨와 살고 있다. 결혼 생활은 올해로 8년 째. 아직 임신과 출산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김지영 씨의 삶과는 조금은 다르지만 그는 비슷한 이름처럼 주어진 삶의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몸과 마음이 지쳐 일을 그만둔 김은영 씨 역시 주위의 ‘말들’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실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아이는 낳지 않냐는 말을 수백 번도 더 들어야 했고, 아이도 키우지 않으면서 집에서 뭐하냐는 시선들을 감당해야 했다. 누가 그런 걸 정했는지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왜 그렇게 당연한 건 많은지 모를 일이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132쪽)


물론 54년생 김순득 씨의 젊은 시절보단 좋아졌을 지도 모르지만 아직 멀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김지영 씨의 삶이 낯설다는 사람이 많다는 게 아직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는 증거다. 한 국회의원이 이 책을 국회의원 전원에게 돌렸다고 한다. 대한민국 군대와 남자 고등학교에도 『82년생 김지영』을 하나씩 나눠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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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리뷰 대전] 10년이 지나도 의미 있을 어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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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다. 2007년 국내에 첫 선을 보인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은 2017년에 10주년 기념판으로 새 옷을 입었다. 무인양품의 아트 디렉터로도 잘 알려진 저자 하라 켄야는 기념판 출간을 축하하며 “바람직한 삶의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해 세상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방법이나 생각으로서의 디자인에 대하여 독자와 다시 한번 깊이 교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국내 예술계의 여러 인물들이 좋은 디자인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담은 글로 힘을 보탰다.

 

어쩌면 디자인은 특정한 업종에 종사하는, 혹은 해당 분야를 공부하는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의미 있는 주제라 치부될지도 모른다. 과연 그런가? 맥락에 따라 충분히 다르게 볼 수 있는 부분이지만 예술이라든가 작품이라든가 하는 단어의 무게를 다 걷어내고 ‘하나의 사물이나 쓰임, 가치를 더 낫게 만드는 어떤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단순한 의미에서 볼 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싶다. 그야말로 양과 속도의 전쟁터가 되어버린 일과 생활의 현장에서 디자인은 질의 문제를 놓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한다.

 

디자인이 모두의 문제라면 그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또 좋은 디자인은 무엇인지 물어야겠다. 이 책에서 말하는 디자인은 단순한 기술의 개념을 넘어선다. 그것은 지능이기보다는 감성이고, 소통이며, 생활 속 의문의 발견이다. 생활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문명 비평이며,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각종 정보를 조합해 분명한 메시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해 양질의 정보를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책상 위에 가볍게 턱을 괴어 보는 것만으로 세계가 다르게 보인다. 사물을 보고 느끼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그 수없이 많은 보고 느끼는 방법을 일상의 물건이나 커뮤니케이션에 의식적으로 반영해 가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머리말 중에서)

 

하라 켄야는 디자인의 발생과 변화 과정을 짚어내는 한편, 그 동안 진행해온 여러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 그가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화장지나 티백과 같이 지극히 일상적이고 친근한 물품들을 여러 디자이너를 통해 다시 디자인하면서 나타난 발상의 전환,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위해 눈을 밟는 느낌의 종이를 만든 경험, ‘이것이 좋다.’보다 ‘이것으로 충분하다.’를 목표로 삼은 무인양품의 이야기 등, 책에는 일상의 틈새에서 새로움을 찾는 과정들이 다양하게 담겨있다.

 

책 하나로 갑자기 새로운 세계가 열리지는 않겠지만 책을 덮은 후에 몰라봤던 변화의 가능성을 눈치채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더 좋아지거나 훨씬 재미있어질 만한 것들을 포기하는 경우가 줄어들 수도 있다. 일본인의 시각이 묻어나는 어떤 페이지들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책으로 ‘디자인’은 계속 신경 쓰이는, 관심을 두어야 할 존재로 남을 것이라는 부분이고, 언제 꺼내 들어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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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리뷰 대전] 재능과 노력과 ‘노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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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장편 소설 “꿀벌과 멀리서 울리는 천둥(蜜蜂と遠雷)”이 일본 156회 나오키산주고상 수상에 이어 2017년 올해의 서점대상 1위를 차지했다. 서점대상은 매년 일본 전국의 서점 직원들이 가장 팔고 싶은 책을 투표로 골라 선정한다. 2004년 설립되어 그 역사는 길지 않지만, 역대 수상작들이 모두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어서 발표 때마다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끈다. 특히 온다 리쿠는 2005년에도 “밤의 피크닉”으로 서점대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데, 이번 수상은 서점대상 사상 최초로 한 작가가 두 번째 수상했다는 의미도 있어서 평소보다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구상에 12년, 취재에 11년, 그리고 집필에 7년이 걸린 끝에 온다 리쿠가 내놓은 이번 소설은 피아노 콩쿠르를 무대로 한 청춘군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3년마다 열리는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는 1위를 거머쥐는 자가 세계 최고봉의 콩쿠르에서도 우승한다는 징크스가 전해진다.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유명 음악가로부터 추천서를 받은 소년 가자마 진, 한때 천재소녀라 불렸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된 에이덴 아야, 음대를 나왔지만 지금은 평범한 샐러리맨인 다카지마 아카시, 그리고 음악 엘리트 코스를 밟는 마사루 카를로스 등이 요시가에 콩쿠르에 도전한다. 3차에 걸친 예선, 그리고 본선까지 쉽사리 승자를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개성 넘치는 피아노 선율이 격돌을 벌인다.

 

보통 경기장이나 공연장을 찾는 이들은 현장의 뜨거운 공기와 눈 앞에서 펼쳐지는 뛰어난 기술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소설은 열띤 경쟁을 종이 위의 활자로만 그려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이 소설에서 온다 리쿠는 무대 위를 클로즈업하듯 묘사하는 동시에, 무대 밖의 모습도 파노라마처럼 두루 담아내며 요시가에 콩쿠르의 군상극으로 재편하는 방법을 택했다. 타고난 재능과 꾸준한 노력, 크고 작은 좌절과 성취는 등장인물들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음색을 다양하게 물들이고 그 뒤에 숨은 각자의 드라마가 하나씩 펼쳐진다.

 

무대가 거듭되면서 점점 천재적 재능의 대결이라는 기본 포맷이 반복되는데, 순정 만화나 스포츠 만화, 영화, 혹은 각종 중계 방송 등에서 봐온 듯한 데자뷔를 떨칠 수 없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미소년과 미소녀, 과거의 신비한 인연, 신비로운 교감에 대한 동경 어린 묘사가 나올 때에 특히 그렇다. 하지만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는 별명답게, 온다 리쿠는 이야기의 왕도를 걸으면서도 곳곳에 변주를 가한다. 예를 들어 취미로서의 음악을 계속해 오면서 '평범한 사람의 음악은, 음악만을 생업으로 삼는 자의 것보다 열등한가? ' 하는 의문을 품어온 아카시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천재들이라도 각자 고민을 안고 있는 모습에는 고개를 끄덕일 부분도 많다.

 

안타깝게도 지금 세상은 '노오력'을 함부로 강요하고 열정을 교묘하게 악용한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은, 힘을 아껴뒀다가 최선을 다해야 할 무대는 어떤 것인지 분별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물론 콩쿠르에서도 결국은 결과가 정해진다. 제 아무리 최고의 무대를 선보였다 해도, 무대의 불이 꺼지면 2등 이하는 우승 타이틀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도 결말을 맞이할 때까지 객석을 지키고 있다 보면, 재능과 재능이 부딪히며 새로운 영감이 탄생하는 지점이 보인다. 가치 없는 노력을 종용하는 곳으로부터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발걸음을 돌려야 하지만, 이 책을 보고 나면 내 걸음의 끝은 어느 무대로 이어져야 할 지도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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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리뷰 대전] 책이 따뜻하니 독자 리뷰까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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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화백의 신작은 발간 때마다 두근거림을 준다. 1974년 『각시탈』, 1989년 『날아라 슈퍼보드』, 1994년 『비트』, 1999년 『타짜』, 2003년 『식객』 등 40년간을 한결같이 1권을 잡은 순간, 마지막 권까지 기다리게 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같은 역사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역시 대중적인 큰 사랑을 받는 건 『식객』이나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커피 한 잔 할까요?』같은 사람들의 일상과 밀접한 작품들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끼여있는 작가로 2년전부터 종이 대신 모니터로 작업을 하고, 커피 한잔도 마시지 못하지만 취재와 준비를 통해 현 세대에서 가장 공감 가는 소재 ‘커피’를 선택한 거장의 새로운 시도에 또 한번 독자로써 반가움이 앞선다.

 

작가는 모닝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직장인들, 미래를 준비하며 카페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반가운 이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는 현대인들에게 커피가 현 시대를 관통하는 친구 같은 존재임에 주목했다. 각 화마다 다른 인물들을 등장시켜 에피소드 형태로 이야기를 전개해간다는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쉬운 구성으로 보이지만 한 화 한 화 인물들의 사연 속에 만화적 재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내는 내공은 허영만 작가가 아니면 어려웠을 부분이다. 또한 연재 당시 바리스타들이 각 화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는 경우 적극적인 피드백을 제공해 다음화에 그 내용이 반영되는 연재 만화의 특별한 상호작용도 있었다. ‘산미’, ‘로부스타’, ‘스페셜티 커피’, ‘강배전과 약배전’ 등 커피 전문 용어가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일본에 『신의 물방울』이 있다면 한국에는 『커피 한 잔 할까요?』가 있다고 말할 만큼 한국에 커피 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커피 한 잔 할까요?』는 서울의 어느 작은 골목, 커피 1세대로 〈2대커피〉를 운영하고 있는 박석 사장과 우연히 수제자가 된 강고비라는 젊은이가 커피를 배워나가며 고군분투 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각 에피소드마다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며 커피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펼쳐친다. 디카페인 커피도 안된다며 커피 한잔을 두고 싸우다가 커피맛과 똑 같은 차 한잔에 풀어지는 임산부 며느리와 시어머니, ‘아무거나’라고 주문하는 건축 현장분들의 기호에도 딱 맞는 커피를 대령하는 바리스타, 일이 안풀릴 때 가족의 분위기까지 망치다가 커피콩을 가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찾은 번역가, 한 시대를 풍미한 커피자판기가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온 동네가 마지막 커피를 마시며 축제처럼 즐긴 사연까지, 이 만화에는 마시는 사람의 인생과 커피를 내리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다.

 

각 권의 마지막 장에는 허영만 작가의 자세한 에피소드별 취재일기가 실려있다. 원두의 종류, 커피도구, 새로운 메뉴 등 전문적인 정보가 ‘커피 만화를 넘어선 커피교과서’라는 애칭에 맞게 가득 들어차있다. 만화를 보다 보면 이 카페들이 어딘가에 존재하면 마셔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되는데, 그런 기대를 충족이라도 하듯 ‘헬카페’ , ‘프릳츠’ , ‘노아로스팅’ 등 실존하는 커피숍들을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들은 현실세계와 만화가 연결되는 특별한 재미로 이어진다. 이미 여기에 소개된 대한민국 곳곳의 특별한 커피샵들은 『커피 한 잔 할까요?』를 본 커피 애호가들의 커피 성지 순례코스로 자리잡기도 했다. 이 만화를 통해 커피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 독자라면 영감을 준 책 한 권 끼고 색다른 커피 투어를 추천하다.


『커피 한 잔 할까요?』의 웹 리뷰나 한줄평들은 유독 따뜻하다. 이 만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즐거움이었는지, 재미있게 읽고 있었는데 8권 완결이 아쉽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다. 나 역시 아쉽다. 다음 권이 기다려지는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the last drop’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 오늘도 분주한 카페의 커피 향기가 거리마다 가득하다. 상상하고 느끼고 공감하고 맛과 향을 천천히 음미하며… 오늘도 만화를 통해 한 번 뿐인 우리의 인생을 즐겨본다. 그래도 이 봄, 이 만화가 완결된 것이 너무 아쉬운 분들은 허영만 화백의 27권짜리 『식객 세트』으로 다시 전국 맛 여행을 시작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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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리뷰 대전] 살기 위해 떠난 아주 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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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프란체스카 산나의 첫 번째 그림책입니다. 미국에서 출간된 후, 뉴욕타임즈 가장 유명한 어린이책, 월스트리트저널 가장 좋은어린이책, 퍼블리셔스 위클리 최고의 어린이책 등으로 선정되며 유수의 매체로부터 극찬을 받았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인권 운동 단체인 국제엠네스티에서 인권과 난민에 대해 잘 알려주는 좋은 그림책으로 추천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 인종, 정치적인 문제로 고향을 떠나 세계 여러 다른 나라를 떠돌고 있습니다. 그 중에 대다수는 아이들입니다. 왜 집을 떠나야 하는지, 왜 위험한 배에 올라타야 하는지, 그리고 왜 다른 나라에서 조차 살 수 없는지.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두려움에 떨며 이곳 저곳을 떠도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책의 작가 프란체스카도 이탈리아 난민 수용소에서 두 소녀를 만났습니다. 소녀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고, 유럽의 다른 난민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긴 여행』은 주인공 아이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전쟁은 평화롭던 마을을 혼란에 빠트리고, 아빠마저 빼앗아 갔습니다. 엄마와 남겨진 아이들은 전쟁이 없는 곳을 찾아 떠납니다. 정들고 익숙한 모든 걸 뒤로 한 채, 수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낯선 곳으로 긴 여행을 떠납니다. 긴 여행을 위해 챙겨온 짐은 집에서 멀어질수록 하나씩 버려야 했습니다. 가족을 향해 오는 커다란 검은 손과 무섭게 생긴 국경 경비대. 그에 비해 작게 그려진 엄마와 아이들은 한없이 나약하게 비춰집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은 난민 가족이 겪고 있는 상황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새들도 먼 곳으로 가고 있었어.
우리처럼 매우 긴 여행일 거야.
하지만 국경을 넘을 필요는 없지.
언젠가 우리도 새들처럼 새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새로운 삶을 안전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겠지?

 

SNS를 통해 시리아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했던 7살 소녀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어린 아이의 목소리였기에 더 큰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긴 여행』은 우리에게 난민, 전쟁, 평화, 인권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프란체스카 산나의 은유적인 그림과 이야기는 아이들의 눈에 비친 난민의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눠보세요. 만약 아이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요?』 (콘스탄체 외르벡 닐센 글, 분홍고래), 『다 잘될 거야』 (키르스텐 보이에 글, 책빛), 『잊을 수 없는 외투』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 글, 논장) 등 도 소개해주고 싶습니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야기면서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는 아이들이 세상을 향해 더 넓은 마음을 품게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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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리뷰 대전] 깊은 속마음을 전하는 백희나 표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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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이 열광하는 국민 육아 멘토 서천석 선생님이 페이스북에서 극찬한 동화책, 『알사탕』이 오랜만에 침체된 유아 그림책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방금 엄청난 그림책을 읽었어요. 정말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 그림책이에요.”라는 그 분의 표현만큼 이 책은 많은 엄마와 아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대표 그림책 작가 중 딱 한 명만 꼽으라면 누구나 ‘백희나’라는 이름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녀가 낸 그림책은 놀라운 상상력과 깊이 있는 내용으로 언제나 큰 인기몰이를 하였는데, 이 책은 더욱더 사람들에게 계속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알사탕』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도, 남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도 어려운 아이의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공감의 마법을 보여줍니다. 이제까지 『이상한 엄마』, 『장수탕 선녀님』에서 보여주었던 백희나표 착한 마법의 절정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항상 백희나 그림책이 나온다고 하면, 업계 사람으로서 갖게 되는 기대가 있는데, 그 기대를 너끈히 뛰어넘는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동동이는 소심하고 수줍은 아이입니다. 처음 보는 친구에게 “나랑 같이 놀지 않을래?”와 같은 말 한 마디 걸기에는 용기가 안나 망설이다, 결국에는 혼자 노는 게 나쁘지 않다며 태연한 척 하곤 하지요. 그런 동동이가 신기한 알사탕을 입에 넣을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 사물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집에서 키우는 늙은 개 구슬이의 속사정, 매일 잔소리만 하지만 사실 사랑이 가득한 아빠의 마음, 돌아가셨지만 항상 동동이를 한없이 보듬어 주었던 할머니까지…


각양각색의 알사탕만큼이나 다양한 마음의 소리를 듣고 동동이는 이제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 진심들을 만난 뒤에 자신도 손을 내밀고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사실 이 책을 읽고 어른인 저도 울음을 터뜨렸는데, 그런 사람이 SNS를 살펴보니 꽤 많더라구요. 아마 백희나 그림책의 진심이 우리에게도 맞닿았나 봅니다.

 

『알사탕』은 사실 제가 2년 가까이 유아 담당을 하면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감동적인 그림책이었습니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 돋보일 뿐 아니라,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기에 너무 바쁜 현대인들에게, 그리고 상처받을까 봐 소심해져서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는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에게 이 책을 자신 있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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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정말 자연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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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면 문자라는 매체는 사라지고 장면이나 목소리가 남는다. 꼭 누가 보여주고 들려주기라도 한 것처럼. 이런 게 일반적인 독서 경험인지는 모르겠다. 목소리의 크기나 톤은 매번 거기서 거기지만 이미지는 제법 다양해서 지금도 가끔 꺼내 보는데, 이를테면 이런 장면이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가니 늙은 어머니가 거실에 앉아 있다. 어머니는 들어왔느냐는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바깥 창만 골똘히 바라보고 있다. 머쓱하여 말문을 열 얘깃감을 찾는 사이 정적이 흐른다. 불쑥 어머니가, 어머 꽃이 피었네, 라고 혼잣말을 한다.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듣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투로.

 

도대체 언제쯤 다 집어치울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하며 지낼 때였는데, 이 구절 덕분에 그런 지지부진한 일상과는 다른 생각을 처음 해볼 수 있게 되었다. 눈앞에 활짝 핀 꽃이 슬쩍 떠올랐다 사라졌다. 인간사의 불행과 동떨어져 저절로 자라고 살아가는 것들에 대한 감각이 어렴풋하게라도 생겨났다면 그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저절로 사는 것? 그래, 자연. 그때부터 나에게 자연은 늘 꽃이었다. 이름 같은 건 잘 몰랐어도 처음 보는 색으로 피었어도 하나같이 예뻤고 그래서 귀애(貴愛)했고 마주칠 때마다 반가웠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도 저절로 생겨나 피어나는 타고난 생명력 같은 것을 의식하는 것도 좋았다.

 

저절로, 타고난, 같은 단어를 미처 되돌아가 지우지 못하고 멈칫한다. 화분에 묻혀 꽃을 피워낸 씨앗이 천연 그대로라는 것도, 눈앞에 꽃이 저절로 피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니까. 내 단순한 감각이 보지 못한 과정을 존재하지 않은 셈으로 쳐버린 채 ‘저 자연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기 홀로 존재하겠지, 부럽도다’ 하는 식으로 신비화한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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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꽃의 종자 역시 다른 인공의 세계처럼 “인간의 계획과 실수에 긴밀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엄밀한 ‘야생’이라기보다는 인간이 만든 세상의 일부에 가깝다”라는 글귀를 마주쳤을 때, 그래서 퍽 놀랍고 부끄러웠다. 그렇게 구절구절 친절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자연과 인간과 과학에 대한 ‘팩트’를 ‘체크’해주는 책이 『휴먼 에이지』다. 또 그게 전부는 아니고.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오면. 내 경우, 책을 읽을 때 풍경과 목소리가 떠오르지 않으면 어쩐지 흥이 안 돋는다. 그래서 원서와 사전을 함께 놓고 일일이 확인해가면서 읽어야 하는 외서 편집 과정에서 독서 자체의 기쁨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그래서 마지막으로 본문을 읽을 때 쾌감도 배가 된다.)

 

그런데 『휴먼 에이지』는 좀 달랐다. 번역 원고를 읽는 와중에 일화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목소리로 들려오고 풍경으로 펼쳐졌다. 내가 꼭 우주선 안이며 온실, 실험실에 직접 가 있는 것 같았고, 장난기 섞인 저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희한하고 재미있는 경험. 궁서체로 곰곰이 짚어봤다. 또 놓치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래, 어쩐지. 나는 다이앤 애커먼이 쓴 『휴먼 에이지』를 출발어(영어)가 아닌 김명남이라는 번역가의 도착어(한국어)로 읽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경험이 다 어디서 온 것이었겠는지. 또다시 놀랍고 부끄러워지는 경험을 한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는 인간은 얼굴이 잘 빨개진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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